[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주요 작품들 - 지아르디니 전시관] 이민자·난민·성소수자…이방인의 삶을 품다
2024년 06월 12일(수) 21:35
한국·미국·독일 등 30개 국가관 전시
장우성·이쾌대 등 한국작가 4인 참여
유목민 공동체 생활 재현 설치 작품 등
이민자·난민 등 비주류 작가 작품 대거 전시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내건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지아르디니 공원 전시관과 아르세날레 전시관에서 본전시 참여 작가 331명의 다양한 작품들은 선보인다. 지아르디니 전시관 1층에 전시된 이집트 작가 닐 얄테르(Nil Yalter)의 작품 ‘Topak Ev’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20일~11월24일)를 관람하기 위해선 먼저 두 갈래의 길에서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331명의 작가들이 참가하는 본전시는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지아르디니 공원의 전시관과 아르세날레 전시관 두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기자는 베니스에 도착한 후 숙소에 짐을 풀어 넣고 지아르디니 공원의 전시관으로 향했다. 지아르디니 공원에는 본전시 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30개 국가관이 자리하고 있어 하루에 두 개의 전시 공간을 둘러보는 게 ‘물리적으로’ 빠듯해서다.

지아르디니는 카스텔로 공원의 중심부에 자리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숲이 우거진 공원을 따라 전시관으로 향하면 아르세날레 선착장에서 봤던 티켓 부스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개막한 지 두달째를 맞았지만, 그것도 평일 오후인데도 티켓 부스 앞은 티켓을 구입하려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지아르디니 전시관 앞에 도착하자 화려한 색감으로 장식된 외벽이 시선을 끈다. 지난 대회까지만 해도 화이트 외관이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강렬한 디자인의 벽화로 변신했다.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전시관은 지난 2013년 결성된 브라질 작가그룹 마쿠(MAHKU)가 페루와 브라질 국경 지역의 신화에서 영감받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남미 특유의 다채로운 색채와 이국적인 문양이 깊은 인상을 준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iengers Everywhere).

전시관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붉은 글씨로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발견하게 된다. 남미 브라질 출신의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ndriano Pedrosa)가 선택한 이번 대회의 전시 주제다. 프랑스 예술가 그룹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이 2004년부터 발표한 동명의 작품 시리즈를 차용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 이탈리아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단체 ‘스트라니에리 오분케(Stranieri Ovunque,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의 전단 문구에서 가져왔다. 전시관의 ‘Foriegners Everywhere’ 뒷면에 이탈리아어인 ‘Stranieri Ovunque’가 표기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파노라마’를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기획한 게 인연이 되면서 당시 전시명을 클레어 퐁텐의 작품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에서 차용한 게 이번 베니스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20세기 후반 지구의 남반구(Global South)에서 그려진 추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장.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37명의 예술가가 그린 작품들로, 월전 장우성의 수묵채색화 ‘화실’(1943년, 맨 위)과 대구 출신의 이쾌대 화백의 유화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위에서 네번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위에서 두번째) 등이 전시돼 있다.
올해 주제는 129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도전적인’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주로 서구 중심, 북반구(Global North)의 큐레이터들이 사령탑을 맡은 것과 달리 베니스 사상 최초로 미술계의 변방으로 꼽히는 브라질 출신이다. 파격적인 발탁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이민자, 난민, 성소수자 등 비주류 작가들을 대거 끌어 들였다. 국제 미술계의 주류에서 소외받아온 제3세계 작가들을 메이저 비엔날레인 베니스 전시관에 초청해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장’(場)을 마련한 것이다.

아르디아노 페드로사 감독은 베니스 비엔날레 프레 오픈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전시주제인 ‘이방인’의 범주에는 외국인, 난민, 망명자 등과 같은 지정학적인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면서 “현대 사회속에서 퀴어, 선주민 등 주류에서 비켜나 있는 모든 타자들을 끌어 안는 포괄적인 개념이며, 그런 점에서 이방인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지아르디니 전시관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이집트 작가 닐 얄테르(Nil Yalter)의 작품 ‘Topak Ev’ 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평생 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닐 얄테르는 제10회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한 작가이기도 하다. 전시장의 한 가운데 자리한 ‘Topak Ev’은 10세기경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텐트를 치며 살다 이주한 유목민 벡틱(Bektik)의 공동체 생활을 재현한 설치작품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낡고 헤진 천으로 사실감을 살린 텐트를 통해 고달픈 이주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장의 양 벽면에는 유목민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수백장의 흑백사진과 비디오 영상물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 공간을 지나면 20세기 후반 지구의 남반구(Global South)에서 그려진 추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섹션이 나온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37명의 예술가가 그린 작품들로, 비록 나라와 역사는 다르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는 월전 장우성의 수묵채색화 ‘화실’(1943년)과 대구 출신의 이쾌대 화백의 유화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전시돼 흥미롭다. 서양 작가들의 100여 점의 초상화 속에서 한복 차림을 한 한국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K-미술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와 관련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전통 두루마기와 서양의 페도라를 쓰고 유화 물감과 동양화 붓을 든 이쾌대는 한국과 한국 미술의 미래를 예감한 듯 보인다고 밝혔다.

초상화 섹션에서 관람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작품이 있다. 바로 멕시코 출신의 여성작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다.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이마에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를 연상케 하는 얼굴이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전신마비에도 예술적 열정을 불태운 작가의 서사와 오버랩되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또한 이례적으로 카리브해의 작은 섬이자 스페인 식민 지배를 받은 푸에르토 리코의 아카이빙 전시도 눈여겨 볼 만하다. 푸에르토 리코는 1493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 400년 동안 식민지로 지냈지만 1898년 미·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로 미국령이 된 국가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흑백사진과 설치작품을 통해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되 대통령 선거권은 없고,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영어로는 소통이 어려운 경계인의 삶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한국 작가 4명이 참여하는 등 쾌거를 거뒀다. 장우성, 이쾌대 이외에 1세대 여성 조각가로 불리는 김윤신과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퀴어작가 이강승이 주류에서 비켜서 있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출품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지오아 클라우디아(Gioia Claudia) 홍보매니저는 “올해 전시주제는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앞으로 펼쳐진 미래가 어우러질 경우 그 어떤 명제 보다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될 것 ”이라면서 “개막 두달째를 앞두고 있지만 지난 2022년 대회 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를 방문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베니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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