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련사에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백련사 초입에 들어서면 빨간 동백꽃망울이 잎 사이사이에 숨어 방문객들을 유혹한다. 며칠 전 막을 내린 ‘동백 축제’의 여운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 여기저기 꽃망울은 계속 피워 오른다. 더 찐한 봄기운을 기다리는 듯 아직도 꽃잎이 열리지 않은 꽃망울도 적지 않다. 백련사 동백은 낙화로도 유명하다. 나무에서 만개해 절정을 이룬 동백이 떨어져 다시 한번 땅에서 붉게 피어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하며 일부 방문객은 낙화를 모아 ‘하트’를 그리면서 동백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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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물어 있는 동백(사진 위) 과 낙화로 만든 하트모양 |
동백림을 지나면 절 앞에 외롭게 서 있는 홍매화도 마주하게 된다. 동백의 무리와 앙상블을 이뤄 봄을 이끈 그의 자태에 한참 동안 시선을 빼앗긴다.
꽃 따라 걷다 보면 사찰 옆 녹차밭도 지나친다. 잎 따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듯 차밭의 초록이 유난히 짙다. 녹차밭 위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 앞바다는 쾌청한 날씨 덕에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산사에 불어오는 바람은 한결 부드럽게 와 닿는다.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1km 정도의 오솔길은 나무 사이 사이로 새어드는 봄볕에 푸근하기만 하다. 또 힘들지 않고 완만한 꼬불길이 생각에 잠기기 좋고, 중간쯤 이르면 대나무 숲 바람 소리에 정겨움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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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사진위)과 다산초당 |
대숲에서 조금 더 가면 천일각에 이른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것으로, 다산이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난 1975년 강진군에서 만든 누각이다. 이어 다산이 집필했던 동암을 지나면 다산초당에 이른다. 초당까지 내비친 햇빛을 받으며 마루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긴 숨을 들이마신다. 오랜만에 맑고 상쾌함이 가슴 깊게 느껴진다.
/글·사진=서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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