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23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3년 12월 29일(금) 00:00
카카오 ‘뚝’. 어느 신문의 1면 제목이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데이터센터 화재로 작동을 멈춰 대혼란이 일어난 ‘카톡 먹통’ 상황을 네 글자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편집의 맛과 힘을 보여줬다.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은 편집도 있다. 정부가 만 0세 아동의 부모급여로 월 70만원을 지급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한 편집기자는 ‘갓난아기 연봉 1000만원 시대’라는 제목을 썼다. ‘정부 지원금’을 ‘연봉’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행정기사의 루틴에서 멋지게 탈출했다.

대다수 신문 독자는 제목을 통해 기사를 읽는다고 한다. 일상에 쫓겨 제목만 읽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정보 홍수 시대에 기사 읽기의 선택은 제목의 주목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제목이 읽히지 않으면 그 기사는 독자의 눈에서 멀어진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신문을 보는 시대에 제목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2023년 마지막 신문을 편집하는 날이다. 올 한해 독자의 공감을 얻은 제목을 얼마나 썼을까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이 입시 제도를 흔들 때 ‘대통령 한마디에 시험에 빠진 수능’, 소 럼피스킨병이 서해안 벨트를 타고 전북까지 온 방역 비상 상황에 ‘牛 牛…럼피스킨병 전남 코앞까지 왔소’, 총선을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그 부작용이 속출하자 ‘출판 기념회인가, 출마 모금회인가’, 손흥민이 토트넘의 도움왕이 된 것과 타이거즈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상황을 비유해 ‘도움의 손…KIA는 빈손’,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5·18의 도시 광주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자 ‘서울의 봄…광주서 ‘붐’이라는 제목으로 편집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어휘력이 좋아야 사유도 풍부해진다. 제목 쓰기는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의 조합이 중요하다. 어려운 단어나 전문용어를 쓴다고 해서 편집의 넓이나 깊이가 더해지지는 않는다. 생각을 명료한 단어로 표현해야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더 쉽게, 더 짧게, 더 깊게.’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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