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과 광주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3년 12월 15일(금) 07:00
한 편의 영화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환과 ‘하나회’가 민주화의 열망을 군홧발로 짓밟고 권력을 총칼로 찬탈하는 과정을 그린 ‘서울의 봄’이다. 영화는 관객 700만 명을 넘어 1000만을 향해 질주하며 수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5060은 빼앗긴 젊은 시절을 돌아보려 영화관을 찾고, MZ세대는 영화를 통해 비극의 현대사를 배운다.

서울의 봄은 결국 오지 않았다. 반란군의 승리에 관객들은 분노를 놀이로 승화시켜 ‘심박수 챌린지’를 하며 즐기고 있다. 또한 관련 자료와 영상을 찾아보고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을 비교하며, 이들이 12·12 사태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공부하는 적극적인 관람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영화를 본 뒤에도 가슴이 아픈 이유는 한 줌도 안 되는 자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어주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이들의 만행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은 생각할수록 기막히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전두환 추징 3법’은 아직도 여야 대결에 따른 ‘是非是非(시비시비)’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획기적인 과학적 진리가 발견되거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면 세상이 곧바로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그가 죽은 뒤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44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영화를 통해서나마 12·12 사태의 진실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는 반란군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6개월 뒤 ‘5·18 광주학살’을 자행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는데도 발포명령, 암매장 등 진실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 해 5월 광주에 온 공수부대원들은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중요한 것은 진실을 증언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속 전두광의 말을 패러디 해본다. “침묵하면 반란군의 하수인, 증언하면 역사의 증인 아닙니까?”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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