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김대중’-김미은 여론매체 부장
2023년 11월 30일(목) 00:00
봉함엽서와 문패.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을 떠올릴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이 두 단어가 생각난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정치인 김대중’도 마음에 남아 있지만 ‘인간 김대중’의 모습은 어쩌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오래전 ‘김대중 옥중서신’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19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교도소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가족에 대한 사랑, 국가관, 역사 의식,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깊은 혜안에 놀랐고, 감옥에서 읽었던 방대한 책 목록에 감탄하곤 했다. 무엇보다 책에 실린 편지를 쓴 봉함엽서의 존재가 인상적이었다. 정치범에게는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쓰는 게 허락됐고 그는 가로 10㎝ 세로 14㎝의 자그마한 봉함엽서에 많을 때는 6000자, 원고지 100여장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한다. 말 그대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글이 담긴 엽서 사진을 보고 있자면 애틋했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울 동교동 집의 문패도 마음에 남는다. 남편의 이름만 적힌 문패가 걸려 있는 여느 집과 달리 그 옛날에 이미 이희호·김대중 두 사람의 문패를 나란히 내건 모습이라니. 옥중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보낼 때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말로 시작하곤 한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 회장이 운영하는 화순 김대중기념공간에 들렀다 김 대통령이 5·18묘역을 처음 찾아 눈물을 쏟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며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됐다.

그의 삶과 투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내년 1월 극장에서 개봉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만든 명필름이 제작에 참여한 이번 다큐는 관객이 후원을 통해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텀블벅 펀딩(30일까지)을 진행중으로 6945명으로부터 4억1100만원을 모금했다. 시대의 큰 어른이었던 김대중의 여정을 다시 따라가며 우리는 ‘또 다른’ 미래를 꿈 꿀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길 위에 있었던, 그를 만나러 가자.

/mekim@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