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즐거운 채집생활 - 김향남 수필가
2023년 11월 27일(월) 00:00
야생의 재료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던 한 요리연구가의 다큐 영화를 본 적 있다. ‘방랑 식객’으로 불린 그의 요리 인생을 담은 것인데, 자연에서 재료를 취하는 거침없는 손놀림과 요리에 담는 따스한 인정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면면히 흘러온 채집의 DNA가 고스란히 그의 삶을 투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자연과 사람에 바치는 숭고한 의식 같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잡초, 이끼, 나뭇가지 같은 집 주변의 것들을 쓱쓱 따서 삶고 무치고 조물거리는 모습이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밥정(情)’으로 풀어가는 속내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화가 끝나고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20만 년 전 등장한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수렵과 채집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었다. 동물을 사냥하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삶을 영위해 온 것이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건 1만 년 전이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이후에야 일어난 일이니 산업사회로의 진입은 기껏해야 300년도 안 된다. 요컨대 인류의 역사는 오랫동안 수렵 채집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몸과 뇌리에 박힌 것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며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수렵 채집하던 DNA가 순식간에 바뀌지도 않는다. 산업화·도시화로 농촌 인구가 급감했어도 최첨단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어도 수렵 채집의 습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그 DNA 또한 여전히 건재하다. 그것은 지금 여기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 산짐승을 잡거나 물고기를 낚는 것은 아니지만 바닷가를 지나다가도 조개나 소라를 보면 일단 줍고 본다. 혹시 더 있나 주변도 살핀다. 산길을 걷다가 밤이나 산딸기를 보면 화들짝 반갑다. 쑥이나 미나리를 채취하는 것은 빠지지 않는 연중행사다.

덕분에 우리집 냉장고에는 철 따라 채취한 것들이 ‘선물’처럼 차 있다. 햇살 좋은 강둑에서 캐온 쑥 몇 덩어리, 줍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껍질 벗기느라 고생깨나 했던 은행알 두 봉지, 새콤달콤 맛도 좋고 빛깔도 좋은 살구잼 한 병, 아카시꽃 효소, 말린 뽕잎, 머위, 취나물, 냉이, 민들레…. 모두 어디 야외로 놀러 갔다가 혹은 산길을 걷다가 횡재라도 만난 듯이 흐뭇하게 수확해온 것이다. 삶고 벗기고 졸이고 말려서 살뜰하게 모셔 두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저절로 이해되었다고 할까.

자연이 안겨준 ‘뜻밖의 선물’은 더 오래전으로 올라간다. 어렸을 때, 봄이었는지 여름이었는지 하여튼 몹시 ‘뿌듯한’ 날이 있었다. 동네 앞 강물이 죄다 빠져나가고 맨바닥을 드러낸 날이었다. 강바닥은 금세 조무래기들 차지가 되었다. 그 천혜의 놀이터를 그냥 둘 리가 있겠는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놀고 있는데 발바닥에 뭉툭 밟히는 게 느껴졌다. 뭐지? 뭘까? 더듬더듬 조심조심 잡아 올린 그것은 유난히 크고 시커멓고 딱딱하고 반질거렸다. 홍합보다 더 크고 더 통통하고 더 까만 그것을 누군가 ‘마개!’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일제히 ‘마개잡이’가 되었다. 그 큰 마개가 손에 잡힐 때면 금덩이라도 거머쥔 듯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쩍쩍 입을 벌린 채 탐스러운 꽃처럼 밥상 위에 올랐을 땐 짜릿함을 넘어 뿌듯함과 흐뭇함까지 동시에 밀려왔다.

‘마개’뿐 아니라 찔레순, 삐비, 살구, 오돌개, 산딸기, 알밤 들도 우리의 ‘사냥감’이었다. 지천에 널렸다고 하지만 찾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 그것들을 찾아 우리는 부러 나서기도 하고 놀다가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다. 일부러든 우연히든 그때마다 안겨 온 것은 기쁨이고 환희였다. 산으로 들로 혹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맞이한 그 ‘선물’ 같은 시간으로 우리의 키는 쑥쑥 자라났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누구도 가난하지 않다고 하던가. 어떤 분은 주말마다 ‘농장’ 가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농장? 농장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만, 그분의 농장이란 다름 아닌 산이고 들판이고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아니 털레털레 빈손으로 나서도 돌아올 땐 제법 가득 차서 온다는, 나물도 캐고 열매도 줍고 건강도 챙겨온다는 자연이라는 농장. 마음속까지 순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천연 세탁제란다. 그분의 위트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곱던 단풍도 다 떨어지고 겨울이 코 앞이다. 당분간 자연은 가만히 있으리라. 헐벗은 듯 앙상한 듯 아무 말도 안 하리라. 깊고 깊은 침묵으로 시간의 성자가 될 것이다. 그동안은 나도 잠자코 있으리라. 그의 침묵을 배우리라. 봄이 오면 다시 길을 나서리라. 그런 날은 ‘뿌듯함’ 한 접시 밥상에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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