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의 검은 흙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3년 11월 19일(일) 22:00
충청남도 태안 마도해역은 고려, 조선시대에 해난사고가 집중 발생했던 장소다. 2008년 마도 1호선이 발견된 이래 2014년까지 모두 네 척의 침몰선이 잇따라 발굴됐다. 마도 1호선은 나주와 영암, 해남 일대에서 곡물과 도자기를 싣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가던 중 침몰했다. 적재 물품은 벼·쌀·콩·조·메밀 등 곡물을 비롯해 고려청자 321점 등 900여 점에 달했다. 마도 1호선은 여느 침몰선과 달리 수화물표인 목간(木簡) 18점이 출수돼 화제를 모았다. 예컨대 “별장 권극영 댁에 20두를 넣은 메주를 올림. 송씨 성을 가진 호장이 보냄”, “대장군 김순영 댁에 올림. 밭에서 생산한 벼 여섯 섬” 등이다. 목간에 등장하는 이들은 고려시대인 1207∼1208년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마도 1호선이 유독 주목받은 이유는 50㎏에 달하는 석탄을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탄은 공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선상 생활을 위한 난방재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꽃샘 추위가 한창인 음력 2월에 항해했기 때문에 난방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마도 1호선에서 발견한 석탄을 분석한 결과 착화 온도는 섭씨 250도로 무연탄(450∼550도)에 비해 착화가 용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함께 발견된 솔방울도 석탄에 불을 붙이는 용도로 해석됐다.

공주대학교 문경호 교수는 최근 펴낸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라는 책에서 마도 1호선 석탄이 화순에서 생산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화순에서 채취돼 장흥 회진현에서 마도 1호선에 적재됐다고 봤다. 조선시대(1530년)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화순현 산천조에 등장하는 “흑토재(黑土岾)는 현의 동쪽 25리에 있으며 검은 흙(黑土)이 생산된다”는 구절을 주목한 것이다. ‘검은 흙’은 석탄을 지칭하는 말이다.

화순탄광이 일제 강점기를 기준으로 채광 100여 년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도 1호선으로 미뤄 역사는 더 깊을 수 있다. 비록 지난 6월 화순탄광이 폐광 조치 됐지만 화순 검은 흙의 역사와 광부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재조명 사업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한다.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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