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심장 -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3년 11월 10일(금) 00:00 가가
인간과 가장 닮은 동물은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히 DNA의 씽크로율이 제일 높은 영장류이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과 용모가 가장 비슷한 원숭이, 장기(심장)가 제일 흡사한 돼지를 각각 인간의 조상으로 설정한 소설이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999년 출간한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원숭이와 돼지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가 인류의 시작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줄거리인데, 결말 부분에서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단계인 주인공 ‘그’가 돼지와 교접해 인류가 탄생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외견상 인간의 사촌이랄 수 있는 원숭이와 동물의 장기 중 가장 중요한 심장의 모양·크기가 인간과 꼭 닮은 돼지를 부모로 설정해 이슈가 된 작품이다. 기묘한 발상인데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부모 한쪽이 돼지라는 점에서 읽고난 후 찜찜함이 남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돼지라는 상상을 하면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실제 돼지와 사람은 심장의 크기와 형태, 심지어 위치까지 거의 같다. 이 때문에 돼지 심장은 심근경색증 수술을 위한 실습용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인간에게 이식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전남대병원 정명호 순환기내과 교수는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배운 돼지 심장실험을 토대로 1996년 국내 최초로 ‘돼지 심장 실험실’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3698마리의 돼지 심장실험을 통해 SCI(국제과학논문색인)급 논문 386편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80명의 석·박사를 배출했다. 돼지 심장실험이 심근경색증 환자 연구와 치료의 교과서인 셈이다.
최근 미국 메릴랜드 의대 연구팀이 지난해 1월에 이어, 올 9월 사상 두 번째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심장을 심장병 환자에게 이식했지만, 이 환자 역시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6주만에 숨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장기이식을 대기하다 약 3000명이 숨졌으며, 미국은 매년 6000명 정도가 수술 받지 못한 채 사망한다. 돼지 심장에 대한 연구가 더욱 성과를 내 심근경색증 수술의 발전은 물론 심장병 환자의 돼지 심장이식도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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