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둘러본 9개 나라 책의 공간과 사람들 이야기, 지혜의 숲으로
2023년 04월 22일(토) 10:00
김언호 지음
책의 첫장을 열면 히말라야의 길가에 앉아 있는 3명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희뿌연 먼지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당시 여행중이던 김언호 대표(한길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너덜너덜해진 책이지만 두 손으로 감싸안은 채 독서에 열중인 광경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인화한 사진은 ‘그날’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책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도 출판인으로서 괜찮다고 판단한 그는 지금껏 30년 넘게 책을 주제로 사진을 찍고 있다.

최근 김대표가 출간한 ‘지혜의 숲으로’에는 1987년부터 2023년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중국 등 9개 국가를 돌아보며 기록한 160여 점의 사진과 글이 수록됐다. 짧지 않은 세월이 말해주듯 그동안 축적한 3만 여 장 가운데 엄선한 사진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평소 책과 출판문화에 대한 자신의 단상들을 40여꼭지의 글로 담아 사진들 사이에 넣어 마치 ‘책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그도 그럴것이 A4용지 크기의 시원한 판형(가로·세로 20×28㎝), 절제된 문장과 348쪽에 달하는 서가 사진, 고판본 확대사진, 책을 보는 사람들 사진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30여년 전 네팔 여행에서 ‘책의 미학’에 눈을 뜬 이후 부산 보수동의 책방 골목부터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이 머물렀던 남경의 도서관, 500년 된 파리의 서점, 세자매가 운영하는 뉴욕의 서점과 1930년대의 영화관을 개조한 책방 등 다양한 스토리가 담긴 책의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올 설 연휴에 둘러본 일본 이시카와 현립도서관의 스토리는 흥미롭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불리는 이 곳은 전 세계 건축가들이 6년에 걸쳐 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했다.

하지만 ‘지혜의 숲으로’의 진짜 주인은 ‘책’이다. 47년 동안 출판인의 삶을 걸어온, 말 그대로 책을 만든 사람의 눈으로 ‘발견한’ 3만개의 책은 종이책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애정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일상에 책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한 그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은 콘텐츠이지만 미학입니다.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수많은 책들이 임립(林立)해서 더 아름답습니다. 책들의 숲입니다. 나는 소나무 숲이 분출해내는 음향을 좋아합니다. 우렁찬 합창입니다.”

<한길사·5만원>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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