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원씨 진정성 느껴져…가해자 고백·사죄 이어지길”
2023년 04월 02일(일) 20:35
5·18묘지 참배하고 유족·피해자들 만나… 외투 벗어 묘비 닦기도
“주범은 전두환, 진상규명 도울 것” 밝혀…오월단체 “용기있는 결정”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지난달 31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 ·18민주묘지의 고(故) 문재학 열사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전씨는 자신의 외투로 묘비를 닦으며 오월영령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5·18 학살 가해자인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지난달 31일 광주에서 5·18 광주 학살 피해자와 유가족·광주 시민에게 사죄한 것과 관련, 5·18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 전씨가 이후로도 꾸준히 5·18 진상 규명에 도움을 주고 다른 가해자들의 양심고백과 사죄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전씨는 지난달 31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공법3단체(5·18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 도청지킴이 어머니 등 유족·피해자들을 만났다. 전씨는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 계엄군 집단 발포에 총상을 입은 김태수씨, 항쟁 이후 상무대에서 구금 및 폭행·고문에 시달렸던 김관씨 등 5·18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5·18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며 그 주범은 저의 할아버지 전두환이다”며 5·18진상규명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같은 날 오후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영령에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했다. 5·18 첫 희생자인 고(故) 김경철 열사와 공식 사망자 중 가장 어린 고(故) 전재수(11살·광주 효덕초 4년)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또 무명열사의 묘 4기에 차례로 참배한 뒤 제2묘역을 찾아 지난해 별세한 고(故) 정동년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묘도 참배했다. 전씨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직접 묘비를 닦으며 애도를 표했다.

전씨는 5·18민주묘지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 묻혀 계신 모든 분이십니다”라고 썼다. 이는 지난 2019년 할머니인 이순자씨가 전두환씨의 광주법정 출석을 앞두고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발언한 것을 뒤집어 쓴 것으로 해석된다.

오월 단체들은 일제히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며 전씨의 사죄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앞으로 전씨가 다른 가해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꾸준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43년동안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5·18을 후손이 나서서 사죄하고 책임지려 하는 모습은 높게 평가받을 일”이라며 “공식 행사 이후에도 전씨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 마음가짐이 기특하다”고 밝혔다.

이어 원 이사장은 “5·18기념재단 또한 전씨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양재혁 5·18유족회 회장도 “전씨 또한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며 불행한 가정에서 많은 한(恨)을 갖고 있었으며, 그만큼 진정성을 갖고 사죄하러 온 것이 울컥했다”며 “전씨의 사죄 행보는 5·18의 이미지가 쇄신되고 진상 규명, 5·18정신 헌법 수록에도 한 걸음 다가가는 상징적인 사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얼마든지 불러주면 5·18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전씨의 마음이 앞으로도 변치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은 “오월 어머니들의 한이 풀릴 때까지 끊임없이 광주를 들러 사죄를 하겠다는 마음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뭐든 하겠다는 전씨의 의지가 앞으로도 오월 진실을 밝히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씨가 5·18진상규명에 대해서도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꾸준히 책임있는 자세로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 달라는 요구의 목소리도 나온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은 “학살의 책임자에 대해 손자들이 언급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라며 “전두환씨 일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이 엄청난 영혼의 고통을 받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이어 “이를 계기로 5·18 학살에 책임 있는 자들은 물론 그 관련자의 자손들도 그날의 진실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존엄’을 지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노태우씨의 직계 가족이자 지난 2019년 이후 수차례 사죄 행보를 이어 온 노재헌(58)씨와 접촉, 전두환 일가와 노태우 일가가 한 자리에 모여 사죄를 하는 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영상=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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