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들 처절한 투쟁 담긴 책 나왔다
2023년 03월 23일(목) 21:00
30년 피해자 인권 회복 앞장 이금주 태평양전쟁유족회장 평전 나와
광주 천인소송·미쓰비시 소송 진행…특별법 제정·대법원 승소 견인
아들·며느리·손녀까지 3대 가족의 외로운 대일 투쟁 숨은 사연까지
최근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배상금을 일명 ‘제 3자 변제’로 갈음하겠다는 방침에 반발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그리는 책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제동원 대법원 승소, 한일회담 문서 공개 등 일제 강제동원의 참상을 알리고 피해자 인권회복에 큰 공을 세운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의 삶을 담은 평전이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최근 이 회장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출간됐다고 23일 밝혔다. ‘스물두 살 박기순’의 저자 송경자 작가가 글을 썼으며 시민모임이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해 평생 힘써온 이 회장이 지난 2021년 타계하기 전까지의 일대기가 담긴 책이다.

1920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남편을 1942년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잃었다. 1950년 아버지와 함께 광주로 옮겨 온 이 회장은 광주 북동성당과 장성성당, 나주 성당에서 근무하며 어려운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1988년에는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결성에 나섰다. 이후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치렀다.

이 회장은 1992년 일제에 의해 군인, 노무자 등으로 끌려간 피해자·유족들이 일본에 공식사죄 등을 청구한 집단 소송인 ‘광주 천인소송’에 돌입했다. 원고는 1,2차 포함 1273명으로, 소송에 앞서 이 회장은 하루에 10여 명씩 유족을 만나 피해 상황을 들으며 피해 사실을 파악했다.

원고 한 명당 A4용지 2~3장 분량의 진술서를 작성했으며 원고의 신분을 증명하는 진술서,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등 관련 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재판은 1993년 6월 30일 본격 시작됐다. 1273명의 원고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실 보상과 자료 공개, 조사, 사죄, 사망자 5000만 엔과 생존자 3000만 엔의 배상을 청구했다.

책에 언급된 당시 열린 7차 재판 장면에서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과 비슷한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시민모임 측의 설명이다.

7차 재판 당시 피고인 일본측은 서면 답변을 통해 “일본 천황이나 역대 수상이 몇 번이고 진사(무릎꿇는 것)·사죄·반성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몇 번을 더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이는 지난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당시 윤 대통령이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재판 당시 변호단은 피고 측이 한국에 건너가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이 과거에 당한 서러움과 괴로움, 아픔을 조사해보고 이에 대한 사과문을 작성해 한국과 일본 신문에 보도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 회장의 외로운 싸움을 뒷받침해 준 아들과 며느리, 손녀의 이야기도 평전에 실렸다.

그간 이 회장의 활동에 3대 가족이 동참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더욱 의미있다는 평가다.

책에 따르면 이 회장이 유족회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아들과 며느리가 도움을 줬다. 광주유족회원들에게 공문을 보내거나, 반송되는 우편물을 받는 일, 유족회 관련 손님이 찾아왔을 때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대신 맡았다.

이 회장의 아들은 직접 타자를 쳐 온갖 공문을 완성했으며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따라 수백개에 달하는 행사 현수막과 어깨띠 제작을 도왔다.

며느리는 소송에 앞서 4400여장에 달하는 문서 작성에 힘을 보태는 등 지병으로 앓아 누울 때까지 평생 이 회장의 곁을 지켰다. 2003년 2월 강제동원 특별법 제정 운동 발대식 이후로는 손녀 김보나가 본격적인 활동에 뛰어들어 일제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매달렸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이 평전은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온 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일제 피해자들의 투쟁 기록”이라며 “이 회장은 늘 일본과의 재판에서 졌지만 그 발자취와 수고, 땀방울과 울분이 모여서 과거사 진상 규명, 일제강제동원피해자 회복에 굵직한 역사적 성취를 남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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