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최권일 정치부 부국장
2022년 12월 07일(수) 01:00
1995년에 광주에서 기우제(祈雨祭)가 열렸다. 1994년부터 2년에 걸친 남부 지방의 강수량 부족으로 인해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도심에서 때아닌 기우제가 열린 것이다.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祭儀)다. 어느 정도 이상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늘이나 신, 혹은 이에 준하는 존재에 제사를 지내며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농경 사회였기에 기우제는 어느 민족이나 지역을 막론하고 흔하디 흔한 문화였다. 우리 민족도 농업을 근간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물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면 곧 국가의 사회·경제 등의 붕괴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우제 역사는 문명의 여명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시대 들어서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수리 사업을 일으키고, 지방의 수령들도 수리 시설 관리에 힘을 썼다. 그런데도 조선왕조실록에 기우제라는 단어가 무려 3122건이나 나올 정도로 여전히 비에 의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태종실록에는 “수한(水旱)은 하늘이 하는 일이고, 갈고 씨 뿌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사(人事)를 닦고 천시(天時)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라고 했다. 장마와 가뭄은 하늘의 뜻이니, 하늘이 주는 좋은 기회를 기다리자는 뜻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댐을 짓고, 수백㎞에 달하는 수도관을 깔아 물을 조절하는 각종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는 여전히 현대 문명의 기술로도 극복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광주와 전남을 비롯한 남부 지방의 가뭄이 심각한 수준이다. 광주 상수원인 동북댐의 저수율이 최근 20%대로 떨어지면서 내년 3월께면 고갈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시민 1인당 물 20% 절약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많은 시민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21세기에 기우제는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이번 가뭄은 기우제가 아닌 시민들의 힘으로 극복되길 기대해 본다.

/최권일 정치부 부국장 ck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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