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정당성-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2년 09월 15일(목) 00:30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15세기 중반부터 중상주의, 해상 무역, 식민지 개척 등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동시에 중세 유럽 봉건영주가 다스렸던 작은 도시국가들이 점차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되면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구축됐다. 이러한 돈과 권력의 집중은 왕이 거주하는 도시인 수도(首都)와 대표 도시들을 필두로 대규모 개발을 촉진시켰다.

무질서한 도로, 어수선한 슬럼의 파리를 대개조한 것은 1853년 나폴레옹 3세였다. 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망 남작에게 전권을 줘 17년간 노후 주택 2만 7000채를 허물고 넓은 도로와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했다. 가난하고 거대하기만 했던 도시가 세계 일류 도시로 탈바꿈된 것은 오스망의 공적이다. 하지만 빈민 거주 지역의 토지·주택 등을 강제 수용하면서 빈민들은 거리에 나앉았고, 이러한 ‘원주민 추방’ 방식은 이후 재개발의 모델이 됐다.

영국에서는 도시와 농촌을 결합해 매연과 악취, 비인간적인 노동 여건, 부실 주택 등 산업도시의 병폐에서 벗어나자는 에베니제 하워드의 전원도시 구상을 실현시켰다. 토지의 공공 소유, 농업·공업 지역의 적절한 배치, 질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 등을 레치워스와 웰윈이라는 두 개의 도시에 적용했다. 하지만 이상(理想)에서 출발한 이 신도시는 후일 인근 대도시에 그저 주택을 제공하는 기능에 그치게 된다.

우리나라의 도시나 농촌에 개발 바람이 분 것은 아쉽게도 일제강점기다. 일본인 관료가 중심이 돼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거주민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 채 이주 일본인들과 부역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개발이었다. 공공이 소유한 토지·하천 등을 싼값에 업체들에게 넘기고, 이를 개발한 업체는 높은 가격에 분양하면서 돈을 챙겼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공이 주도하는 개발은 당연히 공동체 모두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업체와 협약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전 검증과 공감대는 더 중요하다. 개발의 정당성을 얻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사전에 개발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고 이를 적정하게 조율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chadol@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