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과 담양-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2년 07월 13일(수) 01:00
담양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이고 그 중심에 송강 정철이 있다. 정철의 4대 가사문학 중 세 개가 담양에서 탄생했다. 송강정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산실이고 식영정은 성산별곡의 무대다.

정철은 한양에서 태어났지만 을사사화로 몰락한 부친을 따라 담양 창평에 정착해 10년을 살았다. 임억령으로부터 시를 배우고 김인후·송순·기대승 한테 학문을 배우는 등 호남 사림이 그의 학문적 토대가 됐다. 과거에 급제해 공직에 나간 후에도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담양에 은거하며 힘을 쌓아 정계에 복귀하곤 했다.

고향과 같은 담양과 학문적 토양을 제공한 호남 사림과의 악연은 1589년(선조 22년) 기축옥사에서 비롯됐다. 서인인 정철이 정여립 모반 사건의 최고 수사관인 ‘위관’을 맡아 동인 출신 학자들을 대거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정여립 모반 사건을 빌미로 정적인 동인 제거에 나섰는데 이때 희생된 사람이 1000여 명으로 조선시대 4대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희생자 500여 명의 두 배에 달할 만큼 끔찍했다.

피해자 가운데는 대사간(감사원장)인 이발·이길 형제와 최영경, 정개청 등 호남 사림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이발의 82세 노모와 8살 난 아들도 고문으로 숨졌는데 광산 이씨는 멸문지화의 변을 당했다.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이발의 후손들은 제사를 지낼 때 고기를 다지면서 “정철, 정철~” 했겠는가. 기축옥사 이후 광산 이씨는 물론 정개청의 가문인 고성 정씨는 정철 가문인 연일 정씨와 400년간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 개명을 놓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철에게 피해를 입은 6개 문중은 송강고가 정철을 연상케 한다며 학교 이름을 바꿀 것을 요청했는데 학교 측이 ‘솔가람고’로 개명을 추진하자 다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소나무를 지칭하는 ‘솔’과 강의 옛말인 ‘가람’을 합성해 만든 솔가람고도 정철을 연상시키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송강은 뛰어난 문학가였지만 잔혹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호남 사림을 도륙한 정치인 송강이 교명에 맞지 않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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