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분무기통 첼로가 들려주는 음악
2022년 07월 11일(월) 19:30
유니크 첼로 콰르텟 창단연주회 15일 광산문예회관
이승규 작곡가·고근호 조각가 협업…“환경에 대해 함께 생각”

농약분무기통과 연습용 첼로를 결합해 만든 첼로로 연주하는 ‘유니크첼로 콰르텟’

고근호 조각가는 최근 몇달 동안 농약 분무기통을 들고 씨름했다. 오랫동안 폐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온 그였지만 이번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스테인리스 스틸 분무기통이 무려 ‘첼로’로 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시장에 놓여지는 조각 작품이 아닌, 전문 첼리스트들이 연주할 수 있는 첼로로.

폐품으로 만든 첼로로 연주하는 음악회. 이런 ‘무모한 일’을 제안한 이는 광주를 소재로 한 창작곡을 만들고, 다양한 기획 연주를 해온 이승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불가능은 현실이 됐고, 첼리스트가 농약 분무기통과 연습용 첼로로 만든 악기로 바흐의 ‘무반주첼로소나타’를 들려주는 연주회가 마련됐다.

이 씨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건 코로나 19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다. 생상스 서거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그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모티브를 얻어 멸종동물들을 소재로 한 피아노 모음곡 ‘잃어버린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기획을 고민하던 그는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재활용품으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파라과이 랜드필오케스트라를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지금까지 폐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악기는 대부분 타악기 위주였어요. 섬세한 현악기를 만든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없었죠. 현악기 제작자 등에게도 문의를 해봤는데 모두 고개를 흔들더군요. 하지만 부딪쳐보자 싶었습니다.”

이승규 작곡가의 제안을 받은 고근호 작가는 첼로 몸체로 작은 드럼통을 떠올리고 양림동 고물상을 찾았다가 그 곳에서 분무기통을 발견했다.

“이런 작업은 난생 처음이잖아요. 조형성도 고려해야하고 어떻게 소리가 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드로잉 작업을 많이했죠. 아무래도 드럼통은 좀 그렇다 싶었는데 고물상에 분무기통이 걸려있는 걸 보고 감이 왔죠. 무엇보다 조형적으로 꽤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제가 만든 첼로 네 대의 음색이 다 다르다고 하더군요. 미묘한 차이가 난다구요. 저에게도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주홍 작가는 연주자들이 입을 의상을 만들었다. 작업장에서 많이 입는, 위아래가 연결된 점프슈트에 시민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남은 페인트를 뿌려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연미복 보다는 노동자, 농민 등 일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의상이 제격이다 싶어서였다. 또 정권태 목공예가와 영상작가 임성업씨도 힘을 보탰다.

악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관심은 “과연, 나무 몸체가 아닌, 금속 몸체를 활용한 첼로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하는 점이었다. 금속의 차가움이 낯설기도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듣기 편안했고, 무엇보다 악기를 직접 켤 연주자들이 흥미를 보였다.

‘유니크첼로 콰르텟’은 첼리스트 박효은·정아름·김가영·김성복으로 구성됐다. 모두 환경에 관심이 있고, 무엇보다 새로운 악기와 연주에 대해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은 이들이었다. 단원들은 새로운 악기에 적응하며 소리를 만들어내야하는 터라 ‘고민’도 많다.

“제안을 받고 파라과이 랜드필오케스트라 영상을 보며 재활용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늘 연주하던 첼로와는 음색도 다르고 울림도 많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에게 편한 악기는 아니지만 음색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첼리스트 박효은은 “힘들기는 하지만 단원 모두 새로운 도전으로 ‘소리’를 만들고, 최상의 것을 찾으려 애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니크첼로 콰르텟 창단 연주회는 오는 15일 오후 7시30분 광산문예회관에서 열린다. ‘Save The Earth’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환경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프로젝트다.

첼리스트 박효은이 바흐의 ‘무반주첼로협주곡 1번 1곡 전주곡’을 들려주며 ‘유니크첼로 콰르텟’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이어 콰르텟이 이승규 곡 ‘힘’, ‘위로’, 히사이시 조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마이클 잭슨의 ‘힐더 월드’ ‘베사메무초’를 연주한다. 라벨의 ‘볼레로’를 연주할 때는 박창훈, 이효성, 김경헌이 무용 공연을 펼친다.

이승규 작곡가의 ‘잃어버린 동물의 사육제’도 만날 수 있다. 1곡 ‘백두산 호랑이’를 시작으로 북극곰재두루미, 수달, 흰뿔 코뿔소, 흰수염 고래 등 7곡은 멸종동물을 소재로 했으며 마지막곡 ‘인간’은 즉흥곡과 퍼포먼스로 꾸며진다.

이번 행사는 ESG(환경, 사회적 책임, 책임 경영)에 관심있는 광주지역기업과 (사)광주환경운동연합이 함께하며 자연순환 부스도 운영한다. 문의 010-3093-4828. 티켓 가격 1만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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