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도시를 만드는 수준 높은 도시공원] 도시민 생활 풍성하게 하는 ‘녹색 인프라’ 도시 성장 이끈다
2022년 07월 06일(수) 02:00
생태보전, 공기·수질 정화, 도시열섬 등 생태적 역할 수행
녹지 기능 유지하면서 문화 등 공공기능 복합화 전략 필요
美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 뉴욕 하이라인 등 도시공원 명소화
수준 높은 공원 도시 이미지 격상…시민 자부심·애착심 높여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은 과학산업관, 영화관, 음악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 뿐 아니라 도서관, 취업 정보제공, 언어 학습, 인터넷 등 인근의 저소득층 이주민들을 위한 지원기능도 담고 있어서 실질적인 지역재생의 거점 역할도 수행한다.

도시공원은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의 개방공간(openspace)이다. 도로, 상하수도, 철도 등 기본적인 도시기반시설을 ‘회색 인프라(Grey infrastructure)’라고 부른다면, 도시공원은 도시민의 생활을 풍성하게 만드는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이다.

도시공원의 가치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원녹지는 생태보전, 공기와 수질 정화, 도시열섬과 소음 완화 등 환경생태적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공원은 시민들의 건강한 여가활동을 촉진하고 정신건강에 기여하며, 사회적 소통을 촉진하고 도시에 대한 애착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근래 도시공원의 역할은 보다 다양해져서, 시가지 확산을 막고 도시 기능을 분리하며 낙후지역을 재생하고 도시의 성장을 이끄는 역할도 담당한다.

그러나 도시공원의 조성과 관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성 도시에서는 공원 부지를 구하기 어렵고, 토지 구입과 공원 조성에 소요되는 재정을 확보하기도 힘들다. 최근에는 공원 지정 후 20년 이상 조성되지 않은 장기미집행 공원용지를 해제하는 일몰(실효)제가 시행되어 큰 혼란이 일기도 했다. 기존 공원의 관리도 문제이다. 평범한 공원녹지는 매력을 잃어 도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이용률이 떨어져서 잘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공원의 활력을 살리고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기능 복합화, 이미지 명소화, 조성 및 관리 방식 다변화 등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주거, 상업, 업무 등 토지이용의 복합화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원 기능의 복합화도 필요하다. 환경생태적 기능이 중시되는 도시 외곽의 자연공원에서는 녹지와 녹량(Green Volume) 확보가 중요하지만 생활공간 인근의 도시공원에서는 도시민의 활용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녹지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문화 등 공공기능과 적절히 복합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프랑스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La Parc de la Villette)은 예전의 도축장을 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북아프리카 이민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파리 외곽인 19구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과학산업관, 영화관, 음악공연장, 파리음악원 등 다면적인 문화적 총체를 지향하여 낙후지역의 이미지 개선과 재생을 도모하였다. 라빌레트 공원에는 고급 문화시설 뿐 아니라 도서관, 취업 및 건강 정보 센터, 언어 학습소, 인터넷 스테이션 등 인근의 저소득층 이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지원기능도 담고 있어서 실질적인 지역재생의 거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공원 조성 과정은 보통 물리적 공간을 먼저 만들고 운영 프로그램을 나중에 정한다. 그러나 서울의 노들섬 공원은 이와 반대로 먼저 프로그램 공모를 통해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라는 운영 프로그램과 운영주체를 먼저 정하고, 이에 맞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노들섬 공원은 문화콘텐츠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공간 구축을 지향하는 독특한 공원이다.

서울의 노들섬 공원은 프로그램 공모를 통해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라는 운영 프로그램과 운영자를 먼저 정하고 이에 맞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 www.surc.or.kr>
이런 사례들은 도시공원이 단순한 녹지와 휴식공간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기능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으며, 공간 조성에 못지않게 운영 프로그램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능 복합화는 도시공원의 활용도와 매력을 높이고 장소성을 강화하며, 커뮤니티 시설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 재생도 지원하는 역할도 담당할 수도 있다.

복합화가 생활공간에 있는 근린공원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면, 명소화는 도시공원을 활용하여 도시의 선도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명소화란 장소의 역사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등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독특한 이야기와 강한 특성을 가진 공간을 창출하여 사람들의 기억에 진한 인상을 남기는 작업이다.

도시공원은 명소화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최근 조성된 대형 도시공원들은 차별화된 테마와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대표적 명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도시 이미지를 쇄신하여 비즈니스 입지를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높은 부가가치와 간접 세수효과를 거두고 있다.

명소화를 통해 도시공원의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으나 이에 소요되는 비용이 문제가 된다. 누구나 차별없이 사용하는 도시공원은 정부가 조성과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도시공원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함께 공공주도에 따른 비효율과 유연성 부족이 문제점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7년 금융위기 후 미국 지자체에 닥친 재정위기로 많은 도시공원이 폐쇄되거나 운영시간이 단축되기도 하였다. 도시공원의 조성과 운영의 다변화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공원녹지정책을 펼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 공원(Millennium Park)은 민간협력을 통한 도시공원의 명소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시카고는 예술도시 브랜드를 확립하기 위해 이 공원을 세계적 수준의 문화 복합공간으로 기획하고,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렌조 피아노, 조경가 캐서린 구스타프슨 등에게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 및 설치 미술가 하우메 플렌사의 크라운 파운틴(Crown Fountain) 등 조형물을 지명공모방식으로 선정하여 설치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밀레니엄 공원은 독창적인 형태와 창의성으로 주목을 받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공원 조성에 소요되는 약 5900억 원($4억9,000만)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였다. 시카고는 이를 민관 파트너십으로 해결하였다. 기금조성 전문가와 도시공간 기획전문가를 영입하여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여, 시카고에 본사를 둔 기업들과 재단 및 시민들의 적극적인 기부를 유도하여 총 비용의 약 45%를 기부금으로 조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시민들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었다. 최고의 설계안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되 최종 의사결정은 시민들과의 소통으로 합의점을 도출했으며, 공원의 주요 시설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였다. Chase Prominade, AT&T Plaza, , McDonald‘s Cycle Center, Crown Fountain 등 공원 시설물의 명칭들이 기부자들의 공헌을 기리고 있다. 밀레니엄 공원은 운영관리에도 민관협력 방식을 도입했다. 비영리 재단(Millennium Park Foundation)이 시카고 시와 계약을 맺고 공원 유지 관리와 프로그램, 투어, 행사 등의 진행을 담당한다.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은 도시공원의 명소화로 도시 이미지의 혁신을 이루었으며, 총 비용의 45%를 기부로 충당한 민관협력의 모범적 사례다. <시카고시 홈페이지 www.choosechicago.com>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은 단숨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부상하여, 2006년 미국 내 방문 희망지 1위에 올랐으며 지금도 매년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밀레니엄 공원은 2004년 개장 후 10년간 약 14조 원, 관광객 유발효과를 합치면 19조~26조 원으로 추정되는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또한 이 공원은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치와 상업시설의 활기를 높이고 오피스 공실률을 대폭 줄였으며 새로운 개발사업을 유도하여 도시 세수증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도 민관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공원 명소화 사례이다. 원래 이 부지는 뉴욕 도심의 버려진 화물철로 노선이었으며, 고급 주거시설로 개발하려는 개발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실현가능한 대안과 정책적인 도구를 찾아 건의하고, 기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벌인 끝에 하이라인의 철거를 막고 공원화의 결정을 이끌어내었다.

하이라인은 버려진 철로를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색다른 이야기의 힘과 7.5m의 높이에서 자연과 도시를 함께 느끼게 하는 독특하고 인상적 경험으로 인해 가장 ‘뉴욕적인 공원’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명소가 많은 뉴욕에서도 많은 시민과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등장하였다.

하이라인에서는 약 2338억 원($1억8730만)의 공사비 중 약 1/4을 민간기부로 조달했으며, 지금도 매년 공원운영 경비의 90% 이상을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러한 민관협력의 공원 운영방식은 더욱 확대되어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800개 이상의 공원 파트너십이 결성되어 도시공원의 반 이상을 관리하고 있다.

수준 높은 도시공원은 도시환경과 이미지를 격상시킴은 물론이고, 도시민의 자부심과 애착심을 높이고 도시 활성화에 기여한다. 이는 곧 공간개선에 재투자될 수 있는 세수의 증대로 이어지고, 도시 공간 전체가 개선되는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어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풍성한 도시를 만든다. 이러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도시공원 조성과 관리방식의 다변화가 매우 긴요하며, 시민과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시민이 주체가 되는 지속가능한 도시공원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인성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 도시설계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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