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 박탈 -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2년 05월 04일(수) 01:00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가해자는 80% 가량이 부모다. 아이를 올바르게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부모가 오히려 학대하는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도 부모의 권한은 제한하기가 쉽지 않다. 민법에서 ‘친권은 곧 성역’이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도 부모의 친권이 아동의 인권보다 우선되는 친권 우선주의가 있다. 현행 민법에는 학대·방임을 이유로 부모의 친권을 제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렇다 보니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해도 행정기관이 잠시 부모와 자녀를 분리 조치했더라도 친권이 유지되면 자녀를 부모에게 돌려 보낼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해 2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일명 ‘정인이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친권 박탈이 쉽지 않고 검사가 아닌 피해 관계자가 친권 박탈을 청구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광주에선 올해 초 세살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30대 양부모의 친권이 박탈됐다. 양부모는 2019년 4월 입양아 두 명 중 한 명을 폭행하고 나트륨이 과다 함유된 음식을 먹여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구청에선 남은 입양아 한 명을 아동보호시설에 위탁하려했지만 친권이 살아 있어 1심 재판으로 양부모들이 구속될 때까지 2년간 분리하지 못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인면수심의 범죄에 한해 친권 박탈이 이뤄졌다. 올해 2월 대구에선 에이즈에 걸린 상태에서 여덟 살 친딸을 성폭행한 30대 아버지가 검찰의 청구로 친권을 상실했다. 4월에는 갓 낳은 자신의 아기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 살해하려 한 청주의 20대 엄마가 징역 12년과 함께 친권 상실형을 받았다.

미국은 심각한 신체적 상해나 만성적 학대 및 방임 시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학대받은 아이가 스스로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있게 됐다. 법무부가 어제 가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미성년 자녀가 직접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 중심의 법률을 자녀 중심으로 전환한 것인데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조치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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