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2022년 04월 25일(월) 03:00 가가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관리 제도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됐다. 1916년 제정된 고적급 유물 보존 규칙(古蹟及遺物保存規則)과 1933년 시행된 조선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朝鮮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保存令)이 법적 토대였다. 일본은 이 법을 내세워 한반도를 파헤쳤다. 황당하게도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적 근거를 찾기 위해서다. 말이 발굴이지 도굴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나주 반남고분군은 1917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발굴했다. 그는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놀라운 유물이 쏟아졌음에도 문서 한 페이지 분량도 되지 않는 보고서로 일축해 버렸다.
해방 후 보존 규칙과 보존령은 당연히 철폐됐어야 했으나 1962년 우리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될 때까지 문화재 행정의 법적 근거가 됐다. 현행 문화재 보호법도 일본이 1950년 제정한 ‘문화재 보호법’을 본뜨거나 영향받아 만들었다. 우리의 ‘문화재’(文化財)라는 용어와 개념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화재 보호법이 친일 성격이 가장 짙은 법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문화재’라는 명칭의 한계는 학계에서 숱하게 지적해 왔다. 문화유산을 재화로 보는 경제적 개념이 농후해서다. 대신 ‘유산’(遺産)으로 개칭해 역사적·정신적인 문화 가치를 새겨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문화재는 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일본만 쓰는 용어다. 북한은 민족 유산(民族遺産), 중국은 문물(文物), 대만은 문화 자산(文化資産)으로 쓴다. 최근 문화재청이 ‘문화재’ 명칭을 ‘유산’으로, 여러 유산을 통칭해선 ‘국가 유산’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때늦었으나 반가운 일이다.
문화재청이 한 발 더 나아가 문화재 보호법의 독소 조항도 손봤으면 한다. 문화재 보호법은 문화재를 국가 지정 문화재 혹은 시·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관리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지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문화재 명칭 개정을 계기로 지정 문화재는 물론 비지정 문화재까지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법체계가 마련됐으면 한다.
/윤영기 특집·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윤영기 특집·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