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무등산
2022년 03월 03일(목) 01:00 가가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아사리판이라고 부른다. 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으며, 이판사판처럼 불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덕망이 높은 스님을 ‘아사리’(acarya)라고 하는데, 이들이 모여있으면 자기 의견만을 앞세우며 논쟁을 벌이는 모습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대규모 공급을 공약으로 내놔 걱정이 앞선다. 이미 도시 공간은 충분이 ‘아사리판’인데도 과거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인허가 남발이 또다시 반복될 것 같기 때문이다. 곳곳에 들어선 맥락없는 고층 아파트들이 이제 한국 도시의 특징이 되다시피 했는데도 말이다.
건설업체, 부동산업체, 투기꾼들만을 위한 부동산 정책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초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 도시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저질 주택, 고층 아파트 단지 등이 도심과 교외에 지어졌는데, 당연히 투기와 난개발이 잇따랐다. 통풍·일조·교통·안전 등에서 매우 열악한 고층 주거단지로 인해 유럽 고유의 도시 경관이 급변하자 도시·건축 전문가, 사회개혁가 등을 중심으로 도시계획운동이 들풀처럼 확산됐다.
이 운동의 핵심은 공원·광장·놀이터·도로 등 공공 공간 확보, 건축 높이 규제, 서민 주택 공급, 역사·문화자원 보존 등이었다. 각 국가·도시마다 도시계획을 도입한 시기, 내용, 운용 방식 등은 조금씩 달랐지만, 주변 모습과 조화되지 않는 고층 건축물을 짓는 행위를 금지시켰고, 개발 수익은 철저히 환수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 인해 유럽 도시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경관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기본계획, 도시관리계획, 경관계획, 디자인계획 등에 수십억 원의 혈세를 쓰고 있는 광주에서 어느 순간 무등산을 보기 어려워졌다. 사실 광주에 살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무등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무등산을 광주에서 사라지게 한 이 계획들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철저한 반성과 대책이 시급하다. 도시계획운동의 근원에서 다시 광주의 도시공간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아야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건설업체, 부동산업체, 투기꾼들만을 위한 부동산 정책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초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 도시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저질 주택, 고층 아파트 단지 등이 도심과 교외에 지어졌는데, 당연히 투기와 난개발이 잇따랐다. 통풍·일조·교통·안전 등에서 매우 열악한 고층 주거단지로 인해 유럽 고유의 도시 경관이 급변하자 도시·건축 전문가, 사회개혁가 등을 중심으로 도시계획운동이 들풀처럼 확산됐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