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애틀 ‘노스게이트 몰’ 70년 역사에서 배우다
2022년 01월 26일(수) 05:00
<4> 도시 공간과 도시 모빌리티는 함께 변화해야 한다
쇼핑몰 넘어 라이프 스타일센터로
차 중심에서 전철·보행으로 확장
단일 목적 시설 중심에서
경험·다양성 있는 도시로 전환
광역·지역·개인교통 긴밀히 연계

노스게이트 몰의 연대기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들. 1950년 4월 21일 노스게이트 몰의 개업일. 당시 건설 중인 I-5의 모습. <출처 Seattle Post-Intelligencer>

# 역사가 주는 교훈을 추적하며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는 미국 시애틀에서 맞았다. 시애틀은 내 고향 대전, 대학 입학 이후 머물게 된 서울 다음으로 내가 박사유학을 하며 가장 오랜 시간 체류한 도시다. 그런 시애틀에 나는 2021년 9월부터 연구년으로 돌아와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과거의 향수를 꿈꾸며 돌아온 시애틀에서는 나를 놀라게 하는 여러 도시적 변화가 진행중이었다.

사실 도시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인지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도시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방향성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것은 마치 ‘무슨 일이든 반드시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처럼, 어떤 도시가 겪은 오랜 변화의 누적과 여러 시행착오가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의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국 시애틀 노스게이트 몰(Northgate Mall)의 7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노스게이트 몰은 시애틀 북쪽 입구에 해당하는 동네에 위치한 대규모 상업시설이다. 노스게이트 몰은 지난 70년 동안 도시 모빌리티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형성과 진화 및 재구성의 변화를 겪었다. 노스게이트 몰의 변화를 통해 도시 공간 따로, 도시 모빌리티 따로가 아니라, 도시 공간과 함께하는 도시 모빌리티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노스게이트 몰의 연대기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들. 당시 건설 중인 I-5의 모습. <출처 Seattle Post-Intelligencer>
# 1950년대 노스게이트 몰의 등장

시애틀 북쪽에 위치하며 아직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동네였던 노스게이트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처음 일어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다. 1948년 2월 22일, 서버번 컴퍼니(Suburban Company)는 노스게이트 60에이커 부지(약 7만3500평)에 12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1억 4000만 달러)를 투자, 미국 최초의 교외 지역 쇼핑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1950년 4월 21일, 3500여대의 주차장을 보유한 노스게이트 몰의 성대한 개업식이 열렸다. 바야흐로 미국 자동차 시대에 교외 쇼핑 몰의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2021년 10월 2일 시애틀의 경전철이 노스게이트 역까지 연장되어 개통되었다. 이 경전철은 2009년 최초 개통 이후 2044년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출처: 김충호)
노스게이트 몰은 상업시설이 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이를 에워싸면서 방대한 주차장이 배치되는 공간형식으로 디자인됐다. 상업시설은 여러 개의 상점 블록들로 구성됐으며 중심부의 인도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배치됐다. 이에 따라 노스게이트 몰은 자동차가 없이는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구성이 됐다. 노스게이트 몰은 처음부터 주변 동네가 아니라 원거리에서 자동차로 방문하는 소비자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스게이트 몰은 ‘자동차의, 자동차에 의한, 자동차를 위한 쇼핑몰’로 계획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동차 중심의 노스게이트 몰은 오늘날 미국 자동차 도로의 근간을 이루는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System)의 건설 이전에 건립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가까이 흘러 미국 서부의 주요 주간고속도로인 I-5의 공사가 워싱턴 주에서 1969년에 완료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노스게이트 몰은 I-5의 진출입구와 서측에서 바로 면하게 됐다. 자동차 중심의 쇼핑몰이 자동차도로와 바로 맞물리게 되면서 노스게이트 몰의 호황과 번영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에 따라 노스게이트 몰은 지속적인 확장과 함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요 임대 매장이나 시설 등이 변경되면서 수차례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특히 공간적으로 지하에서 판매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손쉬운 하역을 가능하게 하는 긴 터널이 생겼으며 지상에서 여러 개의 상점 블록을 연계하던 실외 인도가 상부의 지붕과 함께 실내 공간으로 바뀌게 됐다. 다시 말해, 노스게이트 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웃도어 스트리트 몰’에서 빅 박스(Big Box) 스타일의 ‘인도어 몰’로 변모했다.

2021년 10월 2일 시애틀의 경전철이 노스게이트 역까지 연장되어 개통되었다. 이 경전철은 2009년 최초 개통 이후 2044년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출처: 김충호)
# 2020년대 노스게이트 몰의 새로운 변화

영원히 공고할 것만 같았던 노스게이트 몰의 새로운 변화는 2018년 상반기부터 시작됐다. 아마존을 중심으로 하는 전자 상거래의 등장으로 상업 생태계와 상업시설의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시애틀의 유입인구 증가 및 지속가능개발 의제에 따라 도시설계 및 개발의 패러다임이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노스게이트 몰의 소유주들은 지난 70여년 동안 유지되던 교외 쇼핑 몰로부터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비전 계획을 시애틀 시에 제출했다.

비전 계획은 상업시설의 전유물이었던 노스게이트 몰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거, 업무, 상업, 문화 등이 함께하는 복합용도 개발을 지향했으며 기존의 상업시설 면적을 50~70%까지 확장하면서 다른 주거와 업무, 문화시설의 면적도 대폭 늘리려했다.

한편 새로운 노스게이트 몰은 공간적으로 빅 박스 스타일의 인도어 몰을 다시 아웃도어 스트리트 몰로 회귀하는, ‘내부를 외부로(Inside Out)’ 변환하는 설계 원칙을 제시했다. 또한 자동차 중심의 쇼핑 몰이 아니라 자동차, 전철, 버스, 보행, 자전거, PM (Personal Mobility) 등의 다양한 교통수단이 상호 긴밀하게 연계돼 이용자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노스게이트 몰은 24시간의 도시이자 라이프 스타일 센터로서, 주거와 직장이 함께 있으며 보행, 자전거, PM으로 자유롭게 여러 골목길을 이동할 수 있다. 이제 노스게이트 몰은 주변 동네와 호흡하면서 원거리의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마치 1950년대 노스게이트 몰의 등장이 자동차 시대의 교외 쇼핑 몰을 제시했던 것처럼 2020년대 노스게이트 몰의 새로운 변화는 경험과 다양성이 중요한 하이브리드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필자가 가족과 함께 노스게이트 역을 방문한 모습.
# 살 만한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 시애틀의 교훈

미국의 역사는 1776년 독립선언 이후로 25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시애틀의 역사는 1851년 아서 A 데니(Arthur A. Denny)가 처음 웨스트 시애틀에 도착한 이래 170여 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은 미국 본토의 변방에서 짧은 역사 동안 보잉,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코스트코 등 전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개스 웍스 파크, 피-패치 등 도시계획 및 설계 분야의 많은 우수 사례가 있는 모범 도시다.

이로 인해 시애틀은 미국 내에서 살 만한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의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에 오른다. 더욱이 시애틀은 오늘날 주민투표로 자동차 도로 대신 경전철을 만들고, 미국 내 자전거 이용자 수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도시 모빌리티 역시 혁신적인 도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시애틀 노스게이트 몰의 70년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오늘날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도시 전환 및 건설을 위해 도시 모빌리티의 혁신적 변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자동차 중심의 도시가 아닌 대안적 교통수단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보행, 자전거, PM을 위한 길을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와 PM을 타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에 불과하다.

노스게이트 몰의 70년 역사는 오늘날 도시 공간과 도시 모빌리티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를 잘 보여준다. 첫째, 도시 공간은 토지이용 관점에서 주거, 업무, 상업, 문화 등이 분리되기 보다는 복합돼 도시의 활력을 창출해야 한다. 둘째, 도시 공간은 단일의 대규모 실내 공간보다는 여러 크고 작은 다양한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이 서로 어우러지게 배치돼야 한다. 셋째, 도시 모빌리티는 광역 교통과 지역 교통 그리고 개인 교통이 상호 긴밀하게 연계돼야 한다. 넷째, 이용자 스스로 도시 모빌리티의 다양한 옵션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021년 10월 2일 노스게이트 역의 경전철 개통일에 가족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었다. 노스게이트 역에는 실제 개통을 위해 일 한 공무원, 엔지니어, 현장 근로자 등의 사진과 함께 감사의 문구가 적혀 있었고, 열차에서는 장애인을 기다리며 자전거 탑승을 돕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이 좋은 도시 그리고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불변의 원동력이라 믿는다.

/김충호 <도시설계 및 계획학 박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미국 워싱턴대학교 도시설계 및 계획학과 방문학자·행정중심복합도시 및 송산그린시티 총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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