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급락 뻔한데…정부는 공급과잉 시장격리 뒷짐
2021년 12월 13일(월) 21:00
6년 만의 풍년 시름 깊어지는 농심
전남 재고 36만t 최근 5년내 최다
수확기 들어 쌀값 두 달 연속 하락
쌀 소비량 1984년이후 해마다 줄어
CPTPP 가입 땐 추가 개방 걱정

/클립아트코리아

농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쌀이 남아도는데 정부가 시장격리에 뒷짐만 지면서 쌀값 급락이 불 보듯 뻔한 것이다.

‘6년 만의 풍년’에 올해 전남 쌀 재고량은 최근 5년 내 최다를 기록한 가운데, 밥 한 공기에 드는 쌀값은 300원도 안된 지 오래다. 게다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한국 가입에 따른 쌀 추가 개방이 점쳐지면서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6년 만의 풍년 역설…전남 쌀 재고 36만t=13일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남지역 조곡(粗穀·수확한 그대로의 알곡) 재고는 36만1000t으로, 최근 5년 내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2만4000t보다 무려 61.2%(13만7000t) 많은 양이다.

전남 쌀 재고는 정부가 연말까지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전국 공공비축미 35만t보다도 많다. 정부는 올해 매입 계획량을 전년(33만1000t)에 비해 5.7%(1만9000t) 올리는 데 그쳤다. 전남 배정량은 8만8800t에서 9만1000t으로, 2.5%(2200t) 늘렸다.

정부의 양곡 보유량은 현재 14만t으로 올해 공공비축 35만t을 합쳐도 49만t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 국민이 석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최소 물량이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보유권장량인 70만~80만t을 훨씬 밑돈다.

올해 농협이 자체적으로 매입하기로 한 쌀은 전년보다 19.5%(27만8000t) 증가한 170만t이다. 전남본부는 지난해 26만5000t에서 올해 36만4000t으로, 37.4%(9만9000t) 늘렸지만 이달 초순 이미 배정량의 99% 넘게 매입했다.

올해 전남 지역의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10만1838t(14.8%) 증가한 78만9650t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쌀 생산량은 388만1601t으로, 지난해에 비해 10.7%(37만5022t) 증가했다. 이에 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예측한 2021년산 신곡 수요량은 358만~361만t이다. 수요량과 비교하면 7~8%(27만2000~30만2000t) 초과 생산된 것이다.

지난해 개정된 양곡관리법은 초과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일 때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안 먹고 안 짓고…푸대접에 한 공기 쌀값 263원=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이었다. 하루 158g, 한 끼에 52.7g을 먹는 셈이다. 전년(59.2㎏)보다는 1.5㎏ 감소하고, 10년 전(72.8㎏)보다는 15.1㎏ 줄었다. 식당에서 공깃밥 한 공기를 만드는 데 드는 쌀이 100g인데, 하루 두 공기도 먹지 않는 것이다.

쌀 소비량은 지난 1984년(130.1㎏) 이후 한 해도 빠짐 없이 줄고 있다.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값(정곡 20㎏)은 5만2586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보다 3.2%(-1741원) 떨어졌다. 수확기 들어 쌀값은 두 달 연속 하락 추세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내세우며 쌀 시장 격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g당 2.6원인 산지 쌀값에 비춰 환산한 한 끼(52.7g) 쌀 가격은 138.6원이다. 세끼를 꼬박꼬박 먹더라도 500원이 채 되지 않는 415.7원에 불과하다. 농민들이 아무리 줄기차게 요구해도 밥 한 공기(100g)당 쌀값은 262.9원으로, 300원 선을 넘지 못한다.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수매가도 1㎏당 ‘커피 한 잔’ 값이 나오지 않는다. 이달 말 윤곽이 드러나는 올해 수매가를 조곡 40㎏당 6만2000~6만30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당 1550~1575원이 된다.

이 같은 쌀 푸대접 속에 지난 50년 동안 전남 쌀 재배면적은 4분의 1이 감소했다. 올해 전남 쌀 재배면적은 15만5435㏊로, 50년 전인 1971년(20만8083㏊)보다 25.3% 줄었다. 50년 새 없어진 쌀 논밭은 5만2648㏊로, 이는 여수시(5만1225㏊) 전체 면적을 웃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2019년 기준)은 각각 21.0% 45.8%으로, 코로나19 대유행과 기후변화에 따른 전 세계적 식량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산 넘어 산’…목표가격 폐지하니 무역 개방 우려=우리나라 쌀 농업은 대내외적 변수가 산재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수확기 쌀값이 목표가격 보다 낮을 경우 쌀값 일부를 보전해주는 ‘쌀 목표가격제’(변동직불제)를 시행 14년 만에 폐지했다.

대신 ‘쌀 자동시장격리’ 등 강력한 조치로 쌀값을 보장하겠다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정작 첫해부터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는 농민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CPTPP의 상품 무역 개방 수준은 최대 96% 관세 철폐 수준일 정도로 시장 개방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며, 캐나다·호주·칠레·멕시코·뉴질랜드 등 회원국 상당수가 농업이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역 개방 대부분은 농업인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산업부가 지난 5년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농업에 끼친 생산감소 손실을 분석해보니 한-미·한-유럽연합(EU) FTA를 포함한 5개 FTA로 인한 손실은 1조8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산업부의 다른 분석에서는 11개 FTA로 인한 5년 간 제조업 분야 생산증가 이익이 39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국가예산은 사상 첫 600조원 시대를 맞으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농업예산 비중은 2.8%(16조8767억원)로 역대 최소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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