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호젓한 산책길…그 길을 걷고 싶다
2021년 11월 06일(토) 22: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슬슬 거닐다 - 박여진 지음
완도에는 장도라는 섬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삼았던 청해진이 곳에 있었다. 지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두 차례의 발굴을 통해 우물, 유구 등을 복원했다. 청해진 유적지는 육지와는 200여 m 떨어져 있다. 이곳을 연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목교. 외성문을 통해 유적지 안으로 들어서면 완만한 언덕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아 족히 한 시간이면 돌고도 남는다. 산책로를 거닐다 높은 언덕에 올라 저편을 보면 파란 바다가 보인다. 해상 왕국을 건설하고 독자적인 무역을 도모했던 장보고의 기상과 꿈이 푸른 바다 너머로 넘실거리는 것 같다.
장도는 산책하기에 좋은 섬이다. 게으름을 피우듯 슬슬 걷다보면 장소가 지닌 가치를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산책은 오직 인간만이 행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다. 마음 가는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경치를 완상하고 스스로의 상념에 젖을 수 있다.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움직임 그 자체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산책이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책길을 소개한 책 ‘슬슬 거닐다’는 남다른 시선과 풍경을 담고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덕수궁 돌담길, 행주산성과 수변 산책로, 강진만 생태공원 등 모두 34곳을 소개한다.
번역가이자 작가인 박여진은 주중에는 번역을 하고 주말과 휴일은 그렇게 산책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걸었던 산책길에 대한 단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같은 길이라도 그때마다 날이 달랐고, 바람이 달랐고, 우리가 달랐다. 걷다 보면 걸어온 길이 과거처럼 따라오고, 걸어야 할 길이 미래처럼 이어진다.”
산책길 가운데 오래도록 눈길이 머무는 곳은 ‘벗에게 가는 길’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은 정약용과 혜장스님을 이어주는 길이다. 황사영 백사사건으로 유배돼 강진에서 18년을 살았던 다산은 마음을 품어줄 벗이 필요했다. 그는 쓸쓸하거나 외로울 때면 백련사에 기거하는 혜장을 찾았다. 그를 만나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위안을 받았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그 숲길을 거닐었을 다산의 마음이 읽혀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은 풀벌레 울음과 산새 울음이 가득하다. 다산이 오랜 유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저 숲길 때문이었을 것이다. 숲길에 드리워진 수다한 생명들의 소리는 그의 내면을 다독여주는 따스한 위로였을 것이다.
저자는 거진항의 산책로가 주는 운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흰 등대로 이어지는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낭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엉킨 그물을 다듬는 어부”와 “펄떡이는 생선과 그 생선을 다듬는 상인들”의 풍경은 이내 우리 삶의 모습으로 치환된다.
파주 출판단지의 작은 길들도 따사로운 풍경과 어울린다. 서로 다른 건축물 사이에서 존재를 알려오는 다양한 생명들은 일상속 작은 깨달음을 준다. 습지인 갈대샛강을 중심으로 나뉘어진 다양한 길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거나 혹은 떨쳐버리기에 좋은 길이다.
통도사 무풍한솔길이 주는 여운도 만만치 않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무풍한솔길은 고찰의 명성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바람처럼 굽은 소나무와 짙은 소나무 길로 들이치는 햇볕은 자연이 베푸는 은전에 다름아니다.
이밖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던 덕수궁 돌담길, 임진왜란의 역사가 깃든 행주산성과 수변 산책길, 파로호 인공습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생태공원도 소개돼 있다.
운치 있는 글과 함께 사진가 백홍기가 찍은 사진들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하나하나 표정이 살아 있는 자연은 현자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마음의 숲·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장도는 산책하기에 좋은 섬이다. 게으름을 피우듯 슬슬 걷다보면 장소가 지닌 가치를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산책은 오직 인간만이 행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다. 마음 가는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경치를 완상하고 스스로의 상념에 젖을 수 있다.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움직임 그 자체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산책이다.
![]() ![]() |
산책길 가운데 오래도록 눈길이 머무는 곳은 ‘벗에게 가는 길’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은 정약용과 혜장스님을 이어주는 길이다. 황사영 백사사건으로 유배돼 강진에서 18년을 살았던 다산은 마음을 품어줄 벗이 필요했다. 그는 쓸쓸하거나 외로울 때면 백련사에 기거하는 혜장을 찾았다. 그를 만나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위안을 받았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그 숲길을 거닐었을 다산의 마음이 읽혀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은 풀벌레 울음과 산새 울음이 가득하다. 다산이 오랜 유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저 숲길 때문이었을 것이다. 숲길에 드리워진 수다한 생명들의 소리는 그의 내면을 다독여주는 따스한 위로였을 것이다.
저자는 거진항의 산책로가 주는 운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흰 등대로 이어지는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낭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무늬가 드리워져 있다.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엉킨 그물을 다듬는 어부”와 “펄떡이는 생선과 그 생선을 다듬는 상인들”의 풍경은 이내 우리 삶의 모습으로 치환된다.
파주 출판단지의 작은 길들도 따사로운 풍경과 어울린다. 서로 다른 건축물 사이에서 존재를 알려오는 다양한 생명들은 일상속 작은 깨달음을 준다. 습지인 갈대샛강을 중심으로 나뉘어진 다양한 길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거나 혹은 떨쳐버리기에 좋은 길이다.
통도사 무풍한솔길이 주는 여운도 만만치 않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무풍한솔길은 고찰의 명성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바람처럼 굽은 소나무와 짙은 소나무 길로 들이치는 햇볕은 자연이 베푸는 은전에 다름아니다.
이밖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던 덕수궁 돌담길, 임진왜란의 역사가 깃든 행주산성과 수변 산책길, 파로호 인공습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생태공원도 소개돼 있다.
운치 있는 글과 함께 사진가 백홍기가 찍은 사진들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하나하나 표정이 살아 있는 자연은 현자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마음의 숲·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