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금성산 울고 난 후 김천일 태어나
2021년 10월 08일(금) 07:00
[의병장 태몽과 어릴적 이야기]
호랑이 두마리 들어온 꿈꾸고 김덕령 출생
문열공 김천일은 1537년(중종 32년) 5월 나주군 신촌면 흥용동(나주읍 송월리)에서 태어났다. 금성산이 병풍처럼 두로고 나주평야를 앞에 둔 지형인 이 마을에서 그해 5월 들어 산이 울기 시작했으며, 노인들은 이를 길조라고 반가워했다. 가난한 선비 김언침과 아내 양성 이씨는 금성산의 울음이 그친 3일만에 아들 천일을 얻었다.

최경회의 아버지인 최천부는 향리로 후진 양성에 힘써 10여 명의 제자가 과거에 합격했다. 화순의 부호이자 진사인 임철공이 15세의 최천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자신의 사랑방에서 글공부 하기를 권유했다. 관상에 능했던 임철공은 최천부를 정승 재목으로 보고 자신의 딸인 순창 임씨와 혼례까지 치르게 했다.

혼례식에 최천부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임철공은 최천부가 뒤돌아서는 모습에서만 정승 모습이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천부가 죽은 후에 정승에 오른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천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고 왜적에 맞선 맏아들 최경운, 둘째아들 최경장, 막내아들 최경회 등 삼형제 덕에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으로 증직됐다.

형제의병장 강희보와 강희열은 순천부사를 지낸 아버지 강천상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에서 1561년 8월 13일, 1562년 9월 15일 각각 태어났다.

광양군 봉강면 신기촌(신촌리)에 살던 강천상 부부는 혼인 3년이 지나고도 자녀가 없어 걱정이 컸다. 그러던 중 청풍 김씨가 광양의 백운산 형제봉이 집에 들어와 우뚝 선 뒤 다른 봉우리들도 들어오는 태몽을 꾼 뒤 이들 형제를 출산했다고 전해진다.

지모와 용력을 한 몸에 지닌 김덕령은 1568년 12월 29일 광주 석저촌(충효리)에서 태어났다.

덕령이 태어나기 전 눈이 내리는 무등산에서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내려와 가난한 선비인 덕령의 아버지인 김붕변의 집 안방 앞에 앉아있었다. 마치 김붕변의 아내 남평 반씨의 해산을 기다리듯 아이 울음소리가 터져나오자 호랑이 두 마리는 집 뒤 대밭을 지나 무등산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남평 반씨는 10개월 전 호랑이 두 마리가 방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삼도 임계영의 어머니인 김씨 부인은 황룡이 승천하는 태몽을 꾼 뒤 남편 임희중에게 비밀로 했다. 이후 몸보신을 위해 잡아둔 자라를 풀어줄 것을 남편에게 요구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528년 4월 9일 다섯째 아들인 계영이 태어났다. 이후 임씨 집안에서는 대대로 자라를 안 먹는다고 한다.

1549년 4월 하순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 사는 모의장 최대성의 아버지 최한손의 처 경주 이씨가 노비 3~4명 데리고 뒷산 초암산(일명 금화산)에 올랐다. 시집 1년이 채 못 된 이씨가 초암산 동굴을 구경하다 정화수 그릇에 인근 샘물을 담아 신선에게 바쳤다. 그리고 마음껏 이 샘물을 마신 뒤 10개월만에 최대성을 낳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동굴은 임란 당시 최대성의 누이동생이 이곳으로 피난해 베틀을 짰다고 해서 베틀굴로 불렸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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