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동현마을] 바다엔 김·낙지, 들판엔 벼·호박 … 풍요의 고장
2021년 08월 28일(토) 07:00 가가
75가구 170여명 농·어업 일궈
정월 초하루 천제·보름 한식제
200여년 이어온 마을의 풍습
담장에 벽화 … 걷는 재미 쏠쏠
태풍 막아줄 방파제 보강 시급
정월 초하루 천제·보름 한식제
200여년 이어온 마을의 풍습
담장에 벽화 … 걷는 재미 쏠쏠
태풍 막아줄 방파제 보강 시급
호젓한 시간이 그리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 한반도의 시작점 ‘땅끝 해남’에 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섬, 수려한 산과 길이 반겨준다. 숨은 비경을 찾아 역사와 풍습을 느끼는 시간여행, 자자손손 수백년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송지면 동현마을을 찾았다.
동녘 동(東)에 고개 현(峴), 동현마을은 송지면 서쪽에 위치하고 망재를 경계로 어란마을과 맞닿아 있는데 어란마을에서 볼 때 동쪽고개 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 양씨가 들어와 살다가 떠나고 경주 김씨 일행이 임진왜란을 피해 내려왔다가 이곳에 정착하며 마을 역사가 시작됐다.
동북쪽에 ‘상당’이라는 큰 산에 천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개숫구지산, 북쪽에는 굴덕산이, 남쪽에는 만호바다가 펼쳐져 있다. 주민들의 집은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해안가와 들녘으로 넓게 분포돼 있다.
75가구 170여명이 농·어업을 겸하는데 어업의 주 소득원은 김, 참꼬막, 바지락, 낙지 등이고 농업은 쌀, 마늘, 늙은호박이다.
40대~60대가 주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김 양식을 준비하고 수확하는 시기가 농사와 겹쳐 마을 전체가 봄·가을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어촌계 면허지 230ha에서 25가구가 물김을 채취해 가구당 연간 8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갯벌에서는 낙지, 꼬막, 바지락 채취가 어르신들의 맨손어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또 해남은 우리나라 늙은호박의 70%가 생산돼 송지면은 늙은호박 1번지로도 불린다. 늙은호박은 2002년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건강식으로 이 마을 늙은호박은 2013년부터 TV 방송 ‘한국인의 밥상’ 등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6월 마늘 수확이 끝나면 그 밭에 호박을 심기 시작해 여름부터 밭두렁에는 호박을 건조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호박탑’들이 이색 풍경을 이룬다.
주민들은 마을이 생긴 이래 200여 년간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3일간 천제를 모시고 정월보름에는 헌식제를 지낸다.
이 마을 토박이 박금령(65) 이장은 “마을 지형이 바람막이 없이 도드라져 있어 태풍에 매우 취약하다. 마을 앞바다는 수심이 낮아 간만의 차가 커 예로부터 어선의 인명 사고가 잦았다. 천제는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행사고, 헌식제는 마을 앞으로 떠내려온 시신들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며 영혼들의 한을 풀고 마을의 복덕을 비는 제례행사다”고 설명했다.
헌식제는 각 가정에서 오곡밥을 장만해 바닷가에 내놓고,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군고패가 굿을 이끌고 각 가정마다 지신밟기를 한 뒤 제사상이 차려진 마을 앞바다에서 제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련된 음식은 주민들과 향우들, 관광객들이 나눠 먹으며 한 해 건강을 기원한다.
박 이장은 “헌식제를 지내는 풍습은 전국에서 우리 마을이 유일하다. 주민들과 합심해 앞으로도 잘 계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매력은 걷는 재미. 지난 2011년 벽화봉사단체가 방문해 꽃, 나무, 영화 포스터, 만화 캐릭터 등 마을 구석구석 벽화를 그려놓아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뜻밖의 추억여행을 하게 된다. 시원스럽게 뻗은 마을 안길은 양옆으로 초록이 펼쳐져 개구리 합창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에 지친 눈과 마음을 씻어준다. 또 한적한 해변가를 찾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물멍’을 해도 좋다.
산·들·바다…, 풍요로운 이 마을에도 고민은 있다.
동현마을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바닷물이 집안으로 튀어 온다고 할 정도로 태풍에 취약하다. 기존 방파제는 남동풍만 막을 수 있어 남서풍 등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태풍이 오면 너울성 파도에 속수무책이다. 마을 물양장은 좁고 인근 마을 어란항도 포화상태다. 지난해에는 부잔교에 묶어 놓은 어선 2척이 전파됐고 바지선도 파손 피해를 입었다.
어촌계는 어민들의 재산 1호인 어선에 대한 보호 대책을 해결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촌뉴딜300사업 선정에 집중하고 있다.
재정이 열악한 어촌들의 공통된 숙제로 어민들의 어업활동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6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재원을 투입해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데 어촌계의 힘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 앞 작업장에서 김발을 정리하던 주민 김수남(50)씨는 “태풍이 오면 배 댈곳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그 외에는 이 동네가 정도 많고 다 좋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코로나 이전에는 낚시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지척에 땅끝 전망대 등 갈 곳도 많고 아무 식당을 들어가도 다 맛집이라 힐링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마을 주민들은 항상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됐다”며 밝게 웃었다.
조미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 나는 동현마을. 자연과 역사 그리고 넉넉한 인심,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동현마을이 제격이다.
아이들에게는 농어촌의 정서와 체험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 어른들에게는 고향의 푸근함에 안기며 재충전 하는 시간, 심심하다 싶지만 꼭꼭 씹어 먹으면 숨어있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눈여겨보면 볼게 많다. 익을수록 아름답고 늙을수록 이롭고 끓일수록 달달한 호박처럼….
/광주일보 임수영 기자 swim@kwangju.co.kr
/사진=광주일보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한반도 최남단, 한반도의 시작점 ‘땅끝 해남’에 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섬, 수려한 산과 길이 반겨준다. 숨은 비경을 찾아 역사와 풍습을 느끼는 시간여행, 자자손손 수백년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송지면 동현마을을 찾았다.
동북쪽에 ‘상당’이라는 큰 산에 천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개숫구지산, 북쪽에는 굴덕산이, 남쪽에는 만호바다가 펼쳐져 있다. 주민들의 집은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해안가와 들녘으로 넓게 분포돼 있다.
40대~60대가 주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김 양식을 준비하고 수확하는 시기가 농사와 겹쳐 마을 전체가 봄·가을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또 해남은 우리나라 늙은호박의 70%가 생산돼 송지면은 늙은호박 1번지로도 불린다. 늙은호박은 2002년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건강식으로 이 마을 늙은호박은 2013년부터 TV 방송 ‘한국인의 밥상’ 등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6월 마늘 수확이 끝나면 그 밭에 호박을 심기 시작해 여름부터 밭두렁에는 호박을 건조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호박탑’들이 이색 풍경을 이룬다.
주민들은 마을이 생긴 이래 200여 년간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3일간 천제를 모시고 정월보름에는 헌식제를 지낸다.
이 마을 토박이 박금령(65) 이장은 “마을 지형이 바람막이 없이 도드라져 있어 태풍에 매우 취약하다. 마을 앞바다는 수심이 낮아 간만의 차가 커 예로부터 어선의 인명 사고가 잦았다. 천제는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행사고, 헌식제는 마을 앞으로 떠내려온 시신들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며 영혼들의 한을 풀고 마을의 복덕을 비는 제례행사다”고 설명했다.
헌식제는 각 가정에서 오곡밥을 장만해 바닷가에 내놓고,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군고패가 굿을 이끌고 각 가정마다 지신밟기를 한 뒤 제사상이 차려진 마을 앞바다에서 제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련된 음식은 주민들과 향우들, 관광객들이 나눠 먹으며 한 해 건강을 기원한다.
박 이장은 “헌식제를 지내는 풍습은 전국에서 우리 마을이 유일하다. 주민들과 합심해 앞으로도 잘 계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매력은 걷는 재미. 지난 2011년 벽화봉사단체가 방문해 꽃, 나무, 영화 포스터, 만화 캐릭터 등 마을 구석구석 벽화를 그려놓아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뜻밖의 추억여행을 하게 된다. 시원스럽게 뻗은 마을 안길은 양옆으로 초록이 펼쳐져 개구리 합창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에 지친 눈과 마음을 씻어준다. 또 한적한 해변가를 찾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물멍’을 해도 좋다.
산·들·바다…, 풍요로운 이 마을에도 고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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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현항. 협소한 공간 때문에 태풍이 올 때마다 어선들이 파손 피해를 입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
어촌계는 어민들의 재산 1호인 어선에 대한 보호 대책을 해결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촌뉴딜300사업 선정에 집중하고 있다.
재정이 열악한 어촌들의 공통된 숙제로 어민들의 어업활동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6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재원을 투입해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데 어촌계의 힘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 앞 작업장에서 김발을 정리하던 주민 김수남(50)씨는 “태풍이 오면 배 댈곳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그 외에는 이 동네가 정도 많고 다 좋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코로나 이전에는 낚시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지척에 땅끝 전망대 등 갈 곳도 많고 아무 식당을 들어가도 다 맛집이라 힐링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마을 주민들은 항상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됐다”며 밝게 웃었다.
조미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 나는 동현마을. 자연과 역사 그리고 넉넉한 인심,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동현마을이 제격이다.
아이들에게는 농어촌의 정서와 체험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 어른들에게는 고향의 푸근함에 안기며 재충전 하는 시간, 심심하다 싶지만 꼭꼭 씹어 먹으면 숨어있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눈여겨보면 볼게 많다. 익을수록 아름답고 늙을수록 이롭고 끓일수록 달달한 호박처럼….
/광주일보 임수영 기자 swim@kwangju.co.kr
/사진=광주일보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