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고려·조선…다채로운 건축양식의 전시장
2021년 08월 23일(월) 06:00 가가
<8> 안동 봉정사
‘봉황이 머물다’ 봉정사
신라 문무왕때 능인스님 창건
하회마을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1999년 엘리자베스2세 다녀가
우리나라 최초 목조건축 ‘극락전’
팔작지붕건물 ‘대웅전’ 등 국보
‘봉황이 머물다’ 봉정사
신라 문무왕때 능인스님 창건
하회마을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1999년 엘리자베스2세 다녀가
우리나라 최초 목조건축 ‘극락전’
팔작지붕건물 ‘대웅전’ 등 국보
비가 오락가락한다.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여반장 하듯 변하는 게 우리네 마음이다. 세상 모든 공부는 궁극적으로 마음밭을 일구는 데 있다. 마음이 어느 곳을 향하느냐에 따라 극락과 지옥이 갈린다.
불교에는 종교를 뛰어넘어 우리네 전통과 문화가 깃들어 있다. 산사를 찾는 것은 비록 그것이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문화라는 프리즘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마음 한 자락 붙잡기 위해 산사를 찾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안동 봉정사(鳳停寺). 산사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명칭뿐 아니라 실제 절은 위엄과 기품, 고풍의 아우라를 발한다. 고즈넉함과 지고지순의 미가 절집에 가득하다.
이곳은 태조 왕건과 공민왕, 그리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산지승원 7개 중 유일하게 가보지 못했던 이곳을 찾기도 했다.
예로부터 봉황과 관련된 문양은 최고 지도자를 상징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절이 함의하는 의미와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므로 봉정(鳳停)은 말 그대로 ‘봉황이 머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연유한다는 뜻이다. 누구든 봉정사에 들어서면 가장 귀한 손님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나를 존귀하게 여기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귀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여왕은 이 기간 안동을 찾았고, 당시 하회마을에서 73세 생일을 맞았다. 여왕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20년 후 2019년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이곳을 찾았다.
무엇보다 봉정사는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는 안동이라는 고장에 있다. 지역 전체가 거대한 유물일 만큼 고택과 문화재가 즐비하다. 어디를 가든 고택을 만날 수 있으며, 어느 거리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소나무가 가로수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특히 풍천면 하회마을은 지난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에 등재됐다. 봉정사보다 먼저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낙동강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지점에 위치한다. 반원 항아리와 같은 지형은 흡사 물과 땅이 서로 얽힌 S자 형상의 태극을 닮았다.
그렇게 하회마을과 함께 봉정사는 안동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옛것에 대한 추구, 보존에 대한 열망이 결집된 결과다. 하회마을과 봉정사는 각기 전통, 도량으로 안동을 대표한다. 많은 유산과 문화재가 있지만 두 곳을 빼놓고는 안동을 말할 수 없다.
특히 봉정사에는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축물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다. 지난 1972년 극락전 복원 중 상량문에서 ‘1363년 고려 공민왕 12년 극락전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러한 사실로 사찰은 삼국시대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고려 건축물의 원형을 극락전에서 찾을 만큼 그 의미와 가치가 크다. 이곳에는 조선 초기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소조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사찰 창건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제자인 능인스님이 건립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신라 문무왕 12년(672) 능인스님 창건설에 무게가 실린다. 물론 여느 절처럼 창건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온다. 신비와 위엄을 뒷받침하는 것은 구전 서사다. 조선시대 고문인 ‘영가지’(永嘉誌) 등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기록돼 있다.
능인대사는 도력이 높은 스님이었다. 어느 날 뒷산 천등굴에서 수행을 하다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려 보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봉이 얼마 후 산자락에 앉았다. 능인스님은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이후 능인은 화엄강당(華嚴講堂)을 지어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한다.
또 하나의 설화도 능인과 관련돼 있다. 능인의 도력을 시험하려 어느 여인이 나타나 스님을 유혹했다. 그러나 스님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여인은 흔들리지 않는 능인의 불심에 감복해 수행정진하라는 축수를 한다. 그러면서 어두우면 공부를 할 수 없다며 옥황상제가 준 횃불을 건넨다. 그 이후 산은 천등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초행길인데다 산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꽤나 먼 거리려니 싶었다. 그러나 법당까지는 지척이다. 눈이 게으른 것이지 발이 게으른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방문객을 맞는 건 가파른 돌계단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은데, 눈 앞에 웅장한 누각이 나타난다. 바로 경북 유형문화재 제 325호 만세루다. 경내 입구에 해당하는 문으로 축대 위에 얹힌 듯한 형상이 이채롭다. 정면 5칸의 누각은 직선의 대들보와 다소 불규칙한 곡선의 기둥이 어울려 예술적 조형미를 선사한다.
만세루 아래 좁은 문을 지나면 바로 대웅전이 보인다. 그러나 만세루의 문은 건물에 비해 생각보다 좁다.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서라는 의미가 아닐지. 수행이든, 업으로 삼는 무엇이든 우리의 지향은 ‘좁은 것을 통해 넓은 곳을 향하는 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웅전 복판에는 부처님 불상이 놓여 있다. 팔작지붕 건물인 대웅전(국보 제311호)은 초기 다포 구조를 대표하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지난 1999년 대웅전 수리 당시, 불단 아래에서 발견된 기록에는 ‘1361년 불단을 수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대웅전 장엄은 1361년보다 앞선 고려시대에 축조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 조선 초기 건립된 화엄강당(보물 제 448호)을 비롯해, 이전에 부처님을 모신 중요한 건물이었을 고금당(보물 제449호), 요사채인 무량해회 등을 찬찬히 둘러본다. 흡사 시간을 거슬러 옛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건축과 그곳에 깃든 빛나는 얼을 알현한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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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삼층석탑 |
이곳은 태조 왕건과 공민왕, 그리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산지승원 7개 중 유일하게 가보지 못했던 이곳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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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판과 법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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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풍천면 하회마을은 지난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에 등재됐다. 봉정사보다 먼저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낙동강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지점에 위치한다. 반원 항아리와 같은 지형은 흡사 물과 땅이 서로 얽힌 S자 형상의 태극을 닮았다.
그렇게 하회마을과 함께 봉정사는 안동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옛것에 대한 추구, 보존에 대한 열망이 결집된 결과다. 하회마을과 봉정사는 각기 전통, 도량으로 안동을 대표한다. 많은 유산과 문화재가 있지만 두 곳을 빼놓고는 안동을 말할 수 없다.
특히 봉정사에는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축물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다. 지난 1972년 극락전 복원 중 상량문에서 ‘1363년 고려 공민왕 12년 극락전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러한 사실로 사찰은 삼국시대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고려 건축물의 원형을 극락전에서 찾을 만큼 그 의미와 가치가 크다. 이곳에는 조선 초기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소조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사찰 창건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제자인 능인스님이 건립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신라 문무왕 12년(672) 능인스님 창건설에 무게가 실린다. 물론 여느 절처럼 창건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온다. 신비와 위엄을 뒷받침하는 것은 구전 서사다. 조선시대 고문인 ‘영가지’(永嘉誌) 등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기록돼 있다.
능인대사는 도력이 높은 스님이었다. 어느 날 뒷산 천등굴에서 수행을 하다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려 보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봉이 얼마 후 산자락에 앉았다. 능인스님은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이후 능인은 화엄강당(華嚴講堂)을 지어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한다.
또 하나의 설화도 능인과 관련돼 있다. 능인의 도력을 시험하려 어느 여인이 나타나 스님을 유혹했다. 그러나 스님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여인은 흔들리지 않는 능인의 불심에 감복해 수행정진하라는 축수를 한다. 그러면서 어두우면 공부를 할 수 없다며 옥황상제가 준 횃불을 건넨다. 그 이후 산은 천등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초행길인데다 산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꽤나 먼 거리려니 싶었다. 그러나 법당까지는 지척이다. 눈이 게으른 것이지 발이 게으른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방문객을 맞는 건 가파른 돌계단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은데, 눈 앞에 웅장한 누각이 나타난다. 바로 경북 유형문화재 제 325호 만세루다. 경내 입구에 해당하는 문으로 축대 위에 얹힌 듯한 형상이 이채롭다. 정면 5칸의 누각은 직선의 대들보와 다소 불규칙한 곡선의 기둥이 어울려 예술적 조형미를 선사한다.
만세루 아래 좁은 문을 지나면 바로 대웅전이 보인다. 그러나 만세루의 문은 건물에 비해 생각보다 좁다.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서라는 의미가 아닐지. 수행이든, 업으로 삼는 무엇이든 우리의 지향은 ‘좁은 것을 통해 넓은 곳을 향하는 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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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 목조건축물 극락전 |
이밖에 조선 초기 건립된 화엄강당(보물 제 448호)을 비롯해, 이전에 부처님을 모신 중요한 건물이었을 고금당(보물 제449호), 요사채인 무량해회 등을 찬찬히 둘러본다. 흡사 시간을 거슬러 옛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건축과 그곳에 깃든 빛나는 얼을 알현한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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