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학숙(英學塾)
2021년 08월 11일(수) 04:00
‘상월정’(上月亭)은 담양 창평 월봉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아담한 4칸 한옥의 정자인데 원래는 ‘대자암’이란 암자였다. 고려시대 초기부터 언양 김씨 자제들이 공부를 하던 곳이었으나 오랜 기간 암자 터로 방치돼 왔다. 그러다가 조선 세조 3년(1455년) 김자수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정자를 짓고 상월정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김자수가 손자사위인 성풍 이씨 이경에게, 이경은 사위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인 학봉 고인후에게 양도하면서 상월정은 조선 중기 무렵부터 장흥 고씨가 관리하게 됐다. 고인후의 11세 손인 춘강 고정주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낙향해 이듬해 상월정에 공부방을 차리고 영학숙(英學塾)이라고 했다. 춘강은 고종 때 요즘의 국립 도서관장 격인 ‘규장각 직각’을 지냈던 인물이다.

영학숙은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서울에서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선생을 모셔와 처음에는 집안사람들과 지인들을 가르쳤다. 춘강의 둘째아들 고광준을 비롯해서 사위인 인촌 김성수와 고하 송진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호남은행 창립자인 현준호 등이 이곳에서 수학한 동문들이다. 영학숙은 호남 인재의 산실로 근현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대거 배출했다.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개발한 이승기 박사, 국내에 야구를 처음 소개한 박석윤 외교관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영학숙은 1908년 창흥의숙으로 개편되면서 과학·수학·국사·체육 등 신학문 전반으로 교과목을 확대했다. 창흥의숙에 대한 춘강의 애정과 헌신은 대단했다. 수업료를 받지 않았고 점심도 무료로 제공했다. 학생이 결석을 하면 하인을 보내 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창흥의숙은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창흥학교가 되었고 지금의 창평초등학교로 이어졌다.

며칠 전 담양 영학숙과 정읍 영주정사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학술대회가 정읍에서 열렸다. 근현대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곳의 공통점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영학숙은 고려시대 이래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공부방이다. 우리 선조들이 그만큼 교육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는 호남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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