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와 지도자-김윤하 전남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2021년 08월 05일(목) 06:30

김윤하 전남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아흔이 넘은 어르신이 한 손엔 지팡이, 다른 손은 딸의 손을 잡고 힘겹게 차에서 내린다. 한참 동안 병원 앞에서 기다리던 의사는 미리 준비한 휠체어에 이 환자를 모시고 병원에 들어간다. 전립선암이 커져 요관을 막아 스스로 배뇨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한 달에 한 번씩 도뇨관을 새로 갈아 끼워야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렇게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다닌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아직도 정신이 명료해 담당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 표시를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은 없다.

어르신은 항상 차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는 휠체어를 탄다. ‘휠체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질병, 상해, 장애 등으로 인해 걷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관절인 대퇴(고관절) 부위는 골반뼈와 넓적다리뼈를 잇는 관절로써 하반신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고관절이 골절되면 서고 걷는 것 등의 기본적인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휠체어에 의존하여 움직여야 한다.

사람이 자유로운 보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하는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이다. 행동의 기본이 걷고 뛰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신체의 유연성 및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뼈가 약하기 때문에 가벼운 낙상에도 뼈가 쉽게 부러질 수 있다. 따라서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거나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고관절 골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고관절 골절로 인해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면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로 인해 폐렴, 혈전에 의한 뇌졸중, 욕창, 영양실조증 등 합병증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에 대비한 생활 환경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며 비록 지금은 불 꺼진 연탄재지만, 얼마 전까지 사력을 다해 불을 내어 온기를 만들었기에 재로 남게 된 연탄재의 숭고한 헌신을 기렸다. 어느 날 건강이 악화되어 휠체어로 병원에 온 공무원이었던 어르신은 결국 다 태워져 한 줌의 재가 된 연탄재처럼 국가와 자손에게 뜨거운 사랑을 바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공간 이동을 해주는 휠체어는 작은 행복을 선사해주는 편리하고 꼭 필요한 기구이다. ‘휠체어 함부로 팽개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안락하고 절실한 의자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새삼 휠체어의 역할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런 보상 없이 희생하고 도와주며 살아 왔을까?’라는 자문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병원 앞을 지나치며 포개져 보관되어 있는 휠체어들을 보며, 보잘 것 없이 초라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 지도자를 뽑기 위한 경선이 시작되었다. 모든 후보자들이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외치고 있다. 허나 예수나 부처처럼 도덕적이고 모두가 사랑하고 추앙받는 분이 홀연히 나타나지는 않을 듯 하다. 대권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묻는다. 그간 누려 왔던 모든 혜택과 권력, 편견이나 억울함, 적개심, 욕심 등을 다 떨쳐 버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정통성을 굳건하게 지키며, 오로지 국민의 행복하고 건강하며 풍요로운 생활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고 더불어 잘 사는 나눔의 뜻을 끝날 때까지 고이 간직할 수 있는지를…. 부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힘들고 지친 국민에게 ‘휠체어’ 역할을 하고, 잘 이끌어 주실 훌륭한 분이 선택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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