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
2021년 08월 02일(월) 02:00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 열사가 숨진 6월항쟁을 다뤘다. 영화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스러진 젊은 청춘들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물론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열이를 살려 내라’라는 제목의 걸개그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한열을 부축하는 장면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당시 로이터통신 특파원이 찍은 사진을 보고 화가 최병수 씨가 화폭에 옮긴 것이다.

자유 기고가 김정희 씨가 펴낸 ‘1987 이한열’도 6월항쟁의 기억을 소환하는 책이다. 열사가 의식을 잃은 날부터 장례식이 치러지는 마지막 한 달의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당시 안기부는 세브란스 병동을 감시하고 경찰은 시신을 압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다행히 열사는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묻혔지만 그날의 역사는 아픈 상흔으로 남아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 기습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한열 열사 벽화를 보며 ‘부마(항쟁)인가요?’라고 묻는 일이 있었다. 부산 민주공원 행사장에서였다. 아마도 6월항쟁 시기를 자신의 대학교 1학년 때인 1979년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은 “민주열사를 찾아다니는 쇼는 그만두고 친일과 독재 세력 기득권을 위해 출마한 것을 자백하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이한열 열사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저희 나이 또래에 누가 있겠나”라며 ‘역사의식 부재’ 질타에 대해 반박했지만 글쎄….

맨체스터대 제롬 드 그루트 교수의 저서 ‘역사를 소비하다’에는 역사를 소비하는 여러 양상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국민성, 향수, 상품, 깨달음이나 지식의 형태를 비롯해 증언, 체험, 폭로 같은 방식으로 다뤄진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곧잘 역사를 소환하는 것은 이처럼 ‘국민성’이나 ‘상품’ 등과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의식은 정체성이나 정치 비전과 연계된다.

바야흐로 숨 가쁜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을 다시 ‘역사를 모르는 정치인에게 미래는 없다’로 바꾼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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