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독 이건용 “5·18 가치, 전 세계에 전하고 싶어”
2021년 07월 19일(월) 00:00
[오페라 ‘박하사탕’ 작곡가]
영화 ‘박하사탕’ 원작…80년 5월 배경 한 남자의 인생 담아
2019년 광주 무대 이후 8월 27~28일 서울 국립극장 공연

이건용 예술감독

“나 다시 돌아갈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2000)에서 주인공 영호는 기차가 달려오는 철도 위에 서서 절규한다. 영호의 절규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뚫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사흘 전 봄, 94년 여름, 87년 봄, 84년 가을, 80년 봄 그리고 마지막 79년 가을까지.

개봉 후 20년이 흐른 지난해,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했고, 광주에서 초연됐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제7회 정기연주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이 이번에는 8월27~28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된 한 남자의 파멸과 사랑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의 인생과 사랑을 통해 당시 상황과 5·18을 겪은 광주시민을 투영, 한국 현대사를 담아내며 2막7장이었던 작품은 이번에 2막6장으로 조정됐다.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최근 오페라 ‘박하사탕’ 이건용 예술감독을 만나 5·18에 대한 단상, 오페라 제작배경, 특징 등을 들어봤다.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하고 세종문화회관 서양음악단 예술총감독, 제5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대구 효성여대 교단에 서던 당시는 잊을 수가 없다”며 입을 뗐다.

“대구에서 5·18 소식을 들었어요. 경악을 금치 못했고, 큰 충격에 빠졌죠. 하지만 당시에는 5·18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 ‘살풀이 80’ 등 몇 곡을 쓰긴 했는데 5·18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무리였어요.”

1983년부터는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때라 최루탄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고 출근한 날이 없었다던 그는 1985년 합창곡 ‘분노의 시’를 쓰면서 문득 ‘음악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도 잡혀가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중간고사를 치르던 학생들이 강의실을 박차고 달려나가기도 했죠. 그 광경을 보고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음악으로 뭘 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이러한 고민을 시작으로 그는 작곡그룹 ‘제3세대’ 활동을 하면서 시인의 입을 빌려 현실을 이야기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 그만의 음악세계가 형성됐다. 그 중심엔 ‘광주’가 있었다.

이 씨는 “항상 마음속에 광주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며 “언젠간 꼭 ‘광주’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오페라 ‘박하사탕’이 오는 8월27~28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다.
1998년 그는 광주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목은 ‘오월의 신부’. 원작자인 황지우 작가, 김석만 연출가와 답사 차 광주를 찾기도 했다. 작품은 무대에 올려졌지만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019년 그 당시 광주시립오페라단 정갑균 예술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5·18 40주년을 맞아 오페라를 함께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씨는 두말 없이 승낙했다. 정 감독과 이 씨 그리고 조광화 작가 세명은 강풀의 만화 ‘26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등 여러가지 소재를 찾으며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영화 ‘박하사탕’을 발견했고, 이를 원작으로 오페라 ‘박하사탕’을 제작했다.

원작의 특징인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서사 구조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극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연출상의 고민이 따랐을 것.

작품 제작에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주인공 김영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했다”고 답했다.

“영화는 주인공 한명이 작품을 이끌어가지만 오페라에는 주인공을 비롯해 주먹밥을 만드는 어머니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화순댁, 김영호와 결혼한 홍자 등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화, 소설 등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달리 오페라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작품에서는 ‘망월동의 노래’, ‘안녕 시간아’, ‘우리는 공수’ 등 이 씨가 작곡한 아리아와 영화에 없는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장면 그리고 광주를 상징하는 주먹밥, 시민군 등에 대한 서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오페라 ‘박하사탕’이 광주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며 광주 시민들의 인정과 사랑을 넘어 전 세계로 나아가 5·18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빛고을이 어둠의 세력과 부딪혀 싸운 광주의 이야기는 이제 보편적인 스토리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죠. 특히 오늘날 5·18과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격동의 시기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만한 아름다운 역사를 가진 도시가 많이 없잖아요. 자랑해야지요. 힘 닿는데까지 세계에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웃음)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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