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여울’
2021년 07월 13일(화) 07:00
광주천 직강(直江) 공사가 추진된 때는 1928년 이후이다. 일제는 구불구불한 하천을 직선화하고 좌우에 제방을 쌓았다. 그 이전까지는 불로동 옛 적십자병원 앞 하천변에 형성된 넓은 모래톱에 ‘작은 장터’가 서곤 했다. 이곳 ‘작은 장터’는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해 항일 의병투쟁을 펼친 성재(省齋) 기삼연 의병장이 1908년 2월 일경에 붙잡혀 순국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광주천이라는 명칭 역시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명명된 것이다. 이전에는 건천(巾川), 금천(錦川), 조탄(棗灘) 또는 조탄강 등으로 불렸다. 조탄을 우리말로 풀면 ‘대추 여울’이니 그 이름만 들어도 서정적인 풍광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옛 적십자병원 앞에는 하천을 막은 조탄보가 있어 하천 물이 광주읍성을 보호하는 해자(垓字)를 거쳐 경양방죽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고(故) 박선홍 선생의 ‘광주 1백년’에 따르면 광주천은 시민들의 쉼터였다. “큰 장과 작은 장이 강변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상류 일대가 모두 벌판인데 우마(牛馬)의 방목지요 시민들의 놀이터였다. 보의 주변에 고목이 늘어서 있어 여름철엔 광주 시민들의 유일한 납량지(納凉地)가 되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촬영된 자료 사진에는 조탄보 주변 숲에 일본식 요정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일본인 주객들이 배를 띄워 놓고 밤새 술을 마셔 가며 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광주읍성과 광주천의 모습은 이제 찾기 어렵다. 그나마 광주의 지난 흔적을 꼼꼼하게 기록한 향토사학자와 연구자들 덕분에 과거의 역사를 그려 볼 수 있을 뿐.

광주 역사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광주천-대추여울의 시간’(~8월 29일)은 광주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2층 전시실에는 광주읍성을 세밀하게 축소해 재현해 놓았다. 광주읍성 4대문을 비롯해 조탄보와 노지다리, 작은 장터, 광주읍성, 경양방죽 등의 위치를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무심함 속에서 ‘대추 여울’과 같은 광주의 옛 역사가 잊혀 가고 있다. 100년 전 광주와 광주천의 모습을 살피면서 한여름 더위를 식혀 보는 것은 어떨까.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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