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작곡가 정근
2021년 06월 29일(화) 01:03 가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1980년대 창작된 동요 ‘텔레비전’은 한 소절을 따라 읊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정작 이 곡의 작사자이자 작곡가인 광주 출신 고(故) 정근(1930~2015) 선생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광주문화재단이 ‘근현대 광주 예술가들’을 주제로 진행하고 있는 ‘2021 광주학 콜로키움’을 통해 어린이문화운동을 펼친 작곡가 정근 선생의 삶과 음악 세계를 비로소 알게 됐다. 양림동에서 태어난 그는 1954년부터 호남권 최초의 여의사인 현덕신이 설립한 신생보육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후 어린이 교육을 위해 우리말 노랫말을 짓고 작곡을 했다. ‘새로나 합창단’을 창단해 소록도 나환자 위문 공연을 하는 등 음악 활동도 함께 펼쳤다. 1960년대 TV 시대가 열리자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간 그는 KBS 어린이합창단 지휘자와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동요를 보급하고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유튜브 ‘광주문화재단 TV’를 통해 정철훈 전 언론인이 전해 주는 ‘정근의 동요와 어린이 문화운동’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정근 선생이 겪어야 했던 연좌제의 굴레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됐다. 그의 큰형은 영화감독인 정준채, 둘째형은 ‘검은 머리 차이콥스키’로 불렸던 작곡가 정추였다. 한국전쟁 전 월북한 두 형으로 인해 동생은 연좌제의 모진 고통을 겪었다. 이유 없이 체포돼 고문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갇히기도 했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현덕신의 치료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정근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어린이의 세계와 동요에 몰입했을지 모른다. 그는 2010년 곡성에 ‘구름’ 시비(詩碑)가 세워질 때 한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시는 시의 원형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아 가운데 가장 순수한 상태인 동심을 노래한 것이니까요.”
동요 작곡가 정근의 삶은 광주의 근현대사와 밀착돼 있다. 앞으로도 광주문화재단의 ‘광주학 콜로키움’이 광주의 근현대사에서 가려진 많은 인물들을 발굴해 널리 알려 주었으면 한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동요 작곡가 정근의 삶은 광주의 근현대사와 밀착돼 있다. 앞으로도 광주문화재단의 ‘광주학 콜로키움’이 광주의 근현대사에서 가려진 많은 인물들을 발굴해 널리 알려 주었으면 한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