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 피어난 동요…한국 동요사 한 페이지 열다
2021년 06월 28일(월) 00:00
광주문화재단 오늘 콜로키움
양림동 출신 작곡가 정근 조명
‘둥글게 둥글게’ 등 269곡 작곡

생전의 정근 선생이 ‘구름’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유년시절 광주 양림동 골목은 그에게 놀이터였다. 그 시절은 황금 같은 기억으로 채색되어 있다. 양림교회 부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치던 풍금 소리는 생생하다. 아마도 풍금소리의 여운을 기억하는 어린시절은 훗날 그에게 동요 창작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양림동 출신 동요 작곡가 정근(1930~2015). 광주방송 새로나 합창단 창단, 소록도 나환자 위문 공연, KBS ‘모이자 노래하자’ 방송작가, 어린이 그림책 출판활동, 269곡 작곡 ….

정근은 우리나라 동요사 한 페이지를 연 동요 작곡가다. ‘둥글게 둥글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등 수많은 명곡을 썼다. 그를 빼놓고는 한국 동요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정근 선생의 일생을 다채롭게 만나는 콜로키움이 열려 눈길을 끈다. 광주문화재단은 28일 오후 4시 빛고을아트스페이스 5층 소공연장에서 ‘정근의 동요와 어린이문화운동’을 주제로 정근의 일생을 조명한다.

이날 행사는 2021광주학 콜로키움 ‘광주 근현대 예술가들’ 두 번째 순서로 마련됐으며 정철훈 작가(전 언론인)가 발표를 한다. 이동순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번 콜로키움은 어린이 교육과 동요 보급은 물론 어린이 그림책 출판운동을 전개했던 정 선생의 다채로운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정철훈 작가는 발표를 앞두고 연결된 전화에서 “정근 선생은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동시에 월북 가족 연좌제의 피해자였다”며 “그런 측면에서 ‘전쟁과 동요’라는 두 개념의 충돌 속에서 동요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전후 한국동요사의 한 배경을 되새기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한국 전쟁의 피해자, 월북 집안의 피해자라는 반대급부에서 동요를 선택했다”며 “선생에게 동요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순수한 세계였다”고 덧붙였다.

정근은 지난 1930년 양림동에서 하동 정씨 순극과 온양 정씨 참이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 준채(1917~1980)는 북한 영화 ‘무용가 최승희’를 연출한 초대 서기장 출신 영화감독이며 둘째형 추(1923~2013)는 차이콥스키 음대에서 최초로 졸업논문 만점을 받은 음악가다.

아마도 가계에 흐르는 그러한 예술적 분위기가 정근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근은 1936년 광주 양림교회 부설 양림유치원에 입학해 기독교 신앙을 비롯해 근대 교육을 받는다. 1937년 광주 서석공립보통학교, 1943년 광주서중에 각각 입학했으며 이후 1952년 대구경북대학 사범대 입학, 1954년 동 대학 전시연합대학 2년을 수료한 것으로 돼 있다.

정 작가는 “정근 선생은 광주 출신이지만 전파동요시대 작가다. 지역적으로는 광주지만 이후 전파가 일반화되고 동요가 전국적으로 불리게 되면서 지역을 초월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정근이 어린이 동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생보육교사 근무 경험과 무관치 않다. 사연은 이렇다. 광주 최초 여의사 현덕신이 1951년 광주에 신생보육학교를 설립한다. 신생보육학교는 유아교육 교사를 비롯해 전쟁고아들을 돌볼 사회복지요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1954년 정근은 현덕신의 아들 최상옥과 함께 신생보육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동요를 작곡하게 됐다는 게 정 작가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 노래를 많이 부르던 시절이라 정근은 ‘우리말 동요를 작곡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당시 ‘우체부 아저씨’라는 동요도 탄생한다. “‘우체부 아저씨’는 이산가족을 찾는 동요다. 우체부 아저씨가 전달하는 이산가족의 아픔, 이산의 비애가 담겨 있는 노래다. 광주에서 1955~1956년 ‘우체부 아저씨’를 작곡해 신생유치원에 보급했다.”

1956년 정근은 당시 광주 중앙초등 음악교사인 이은렬과 함께 광주방송 ‘어린이노래회’를 창립한다. ‘어린이노래회’는 세 차례 서울 공연을 통해 음악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1959년 ‘새로나합창단’으로 이름을 바꿔 확대 개편된다.

정 작가는 “새로나합창단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음악의 밤’을 열어 광주시민에게 노래를 선사했다”며 “특히 1963년 8월 소록도 나환자들의 정착산업장인 ‘오마도’를 찾아 노래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30대 중반부터 정근은 방송작가로도 활동한다. KBS 간판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모이자 노래하자’ 등의 작가로 일했으며 KBS 어린이합창단 지휘자를 맡기도 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출판사 편집 고문으로 있으면서 그림책 ‘자장자장’, ‘마고할미’ 등을 펴내 출판활동에도 매진했다.

정 작가는 “정근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 방송인이었지만 그의 대표곡은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애창되었다”며 “동시나 동요 등 아이들을 위한 작품은 교수나 학자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체험을 통해 탄생했다”고 말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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