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딸’ 굴레 벗고 그린 삶의 빛과 어둠… 정지아 작가 창작집 ‘자본주의의 적’
2021년 05월 26일(수) 07:40
‘빨치산’ 부모님 생애 작품의 자양분
“소설은 손톱 밑 흙 같은 노동의 흔적”

정지아 작가

“빨치산의 딸로 살아서 좋았습니다. 가난했고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있었습니다만 아버지 어머니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죠. 가난한 빨치산의 사후에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부모가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도 충분히 받았구요.”

정지아 작가는 지난 1990년 빨치산 부모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빨치산의 딸’로 당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출간 즉시 국가보안법에 의해 판금조치를 당했으며 출판사 발행인이 구속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것은 시대가 낳은 비극이자 우리사회의 아픔이었다. 실제 정 작가의 부모님은 빨치산 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 작가가 네 번째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창비)을 들고 돌아왔다. 그동안 부모세대의 이념갈등과 역사적 상흔을 그려왔던 작가는 이번에는 새로운 소설 화법으로 삶의 빛과 어둠을 읽어낸다.

지난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계기로 작가를 처음 봤다. 남로당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그린 ‘빨치산의 딸’이라는 소설 때문에 다소 강해보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을 작가와 동일시하려는 이편의 단견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담담하고 겸손했으며, 창작에 대한 은근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마치 화선지에 물감이 번지듯 창작의 길을 가는 이의 근기가 배어나왔다.

이번 소설집 발간을 묻는 계기에 대해 작가는 “원래는 장편을 먼저 내려 했는데 쓰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장편인데 아직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옳았던 것이 옳지 않고 아팠던 것이 아프지 않고… 50이 넘으며 이러저러한 삶의 굴곡점을 지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가 이번 소설집 주제인 것 같아요. 내가 알았다고 한 것들에 대한 반성도 담겨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서사적 요소에서 살짝 눈을 돌려 새로운 요소를 탐색한 면들이 보인다. 이전의 창작 문법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롭게 변화에 감응하며 소설 세계를 모색한 것 같다.

정홍수 평론가의 표현대로 “‘경험’이나 ‘기억’ ‘관계’ 등 고유한 실존적 요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믿어온 오래된 정체성의 이야기 자리에 ‘취향’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존재 증명의 요소”들이 펼쳐진다.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면서도 ‘소설의 본령’인 재미와 은근한 울림까지도 전해준다.

“자전적 요소를 사실과 허구의 이중의 겹에 넣고 변주하는” 소설 기법은 그동안 작가의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그러한 스타일의 변주는 작품 세계를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로 제 삶은 늘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삶은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벼워지고 넓어지는 것, 남아 있는 제 삶의 숙제이겠지요.”

작가는 지난 2011년 고향인 구례로 귀향을 했다. 20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계신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구례는 이데올로기의 격전지이면서도 작가의 탯자리였다. 역설적인 이 공간은 어쩌면 다른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감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인지 모른다.

작가는 어머니를 모시며 틈틈이 글을 쓰고 소설 강의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먹고 자는 일의 숭고함을 배우고 있다”는 말에서 이런저런 삶의 풍파를 겪고 난 뒤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달은 이의 선문답으로 들렸다.

“눈을 뜨면 개들 밥 주고 물 주고 산책하고 엄마 밥을 챙깁니다. 이 사소한 일들이 누군가를 살게 하고 살찌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모든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만큼 소설을 쓴다는 말이 있는데 정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다. 비록 살아온 날들이, 아니 자신을 있게 한 부모님 생애가 현대사의 비극과 겹쳐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의미있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상처는 작가의 먹이이다. 작가는 상처를 먹고 자란다”는 말에서 어렴풋이 예상을 할 뿐이다.

그는 앞으로도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 지금보다 더 좋은 소설, 내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한다.

“제게 소설은 왼쪽 손톱 밑에 흙 같은 것입니다. 노동의 흔적이지만 지워야 하는 것이지요. 좀처럼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지워지면 개운하지만 내일 또 흙을 만져야 하고 또 흙이 끼겠지요. 그러한 살아온 흔적, 살아가는 흔적일 테니까요.”

한편 정 작가는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고욤나무’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으며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창작집으로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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