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회보체 글꼴
2021년 04월 20일(화) 00:00
지난해 5월. 광주시 동구 장동 ‘예술공간 집’에서 열린 강연균 화백의 ‘하늘과 땅 사이-5’ 전시회에는 40년 전의 먹먹한 기억을 꺼내 목탄으로 그린 작품 일곱 점이 선보였다. 시신을 수레에 끌고 가는 두 사람, 총탄 자국이 난 광주우체국 우체통, 양동다리에서 마주친 공수부대원, 무명열사의 관, 논에 처박힌 시민군 버스 등.

전시장을 둘러보다 어느 작품 앞에 이르니 차마 발을 떼기 어려웠다. 시민군 박용준의 마지막을 그린 ‘박용준의 피’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진압 작업이 끝난 후 일부러 YWCA를 찾았던 강 화백은 그림 밑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시민군(박용준)의 자리(YWCA 2층 입구 창문 쪽)에는 다 먹지도 못한 빵 한 조각과, 널브러져 있는 헬멧에 흥건히 피가 고여 있었다.”

1980년 5월, 박용준(당시 24세)은 광주 YWCA 신협 직원으로 일하며 저녁에는 ‘들불 야학’에 참여했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던 당시에 들불야학 팀은 5월 21일부터 광주 참상을 알리는 소식지 ‘투사회보’를 전담하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던 그는 인쇄공으로 일한 적이 있어 글씨체가 좋았다. 자연스럽게 등사 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필경’(筆耕)을 맡게 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2층에는 ‘투사회보’ 4·5·7호가 전시돼 있다. 16절지 크기의 ‘투사회보’ 원본은 누렇게 변색됐다. 하지만 글자 한 자 한 자를 반듯반듯하게 꾹꾹 눌러 쓴 박용준 열사의 필체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박용준 투사회보체’가 순수한 시민 모금을 통해서 디지털 글꼴로 제작된다. YWCA와 광주로(路), (사)들불열사 기념사업회가 공동 제안한 ‘박용준 열사 글꼴 제작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5월 27일 마감하는 프로젝트는 2000만 원을 목표 모금액으로 잡았다. 시민 모금은 소셜 펀딩 플랫폼 ‘상상트리’(www.socialfunding.or.kr)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강 화백의 목탄화와 ’투사회보‘에 담겨 있는 박 열사의 오월정신이 새로운 디지털 글꼴로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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