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와 함께 ‘양병론’ 주장 삽봉 이세근
2021년 04월 16일(금) 09:00 가가
퇴계 이황을 평생 스승으로 모신 오봉 정사제


1593년 음력 7월 12일 형제의병장 중 홍민언이 아들 홍시정과 함께 나주로 쳐들어온 왜적과 맞서 싸워 300여 명의 왜적을 참살하고, 포로로 붙잡힌 백성 152명을 풀어주는 대승을 거둔 남평 드들강 전경.
고경명은 율곡 이이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했으며, 송강 정철의 추천을 받아 58세에 승문원 판교와 동래부사를 마지막으로 벼슬을 내려놨다. 김천일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거두인 일재 이항과 장성에 은거하던 하서 김인후에게 글을 배웠다. 우계 성혼에게 당파싸움을 경계할 것을, 율곡 이이에게 밝은 정치 펴야 한다는 편지를 보내는 등 이들과도 인연이 깊었다.
소포 나덕명은 율곡 이이의 문하에 있다가 학자이면서 영의정까지 지낸 사암 박순의 추천을 받아 벼슬길에 올랐다. 오천 김경수는 하서 김인후의 문하에 있었으며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등과 글로 묻고 토론하며, 후학들도 깍듯이 존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도탄 변사정은 27세에 태인에 은거중인 일재 이항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간청해 입문했다. 그곳에서 기대승, 김천일, 기효련, 박광옥, 정엽, 양대복, 하맹보, 김점 등 호남지역 젊은 선비들을 만나 학문과 시국을 논의했다. 최경회는 조선 중기 시인이자 서예가로 이름이 높은 백광훈과 같은 인재를 배출한 송천 양응정에게 3년간 글을 배웠다.
오봉 정사제는 현학처사 정근에게 10살부터 4년간, 이후 경북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을 찾아가 3가지 교훈을 얻고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 당시 퇴계 이황은 “학자는 모름지기 효제충신(孝悌忠信, 효도·우애·충성·믿음), 겸공절약(謙恭節約, 겸손·공경·절약), 침잠독실(沈潛篤實, 침착·차분함·독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정사제는 임계영에게 자신은 늙었다며 의병장을 양보한 죽천 박광전도 스승으로 삼았다. 괴정 최시망은 고봉 기대승, 모의장 최대성은 죽천 박광전, 퇴은당 염결은 김광준의 문하에 있었다.
해광 송제민은 토정 이지함과 친분이 있어 중봉 조헌을 찾아가 난세의 의견을 구하고, 율곡 이이를 지지하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미암 유희춘의 천거가 있었으나 사양했다. 삽봉 김세근은 중봉 조헌의 문하에서 공부한 뒤 율곡 이이와 같은 양병론을 주장했다. 홍민언·홍민성도 중봉 조헌의 제자들이다. 습정 임환은 김천일과 교류했으며, 충민공 양산숙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계 성혼의 밑에서 배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도탄 변사정은 27세에 태인에 은거중인 일재 이항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간청해 입문했다. 그곳에서 기대승, 김천일, 기효련, 박광옥, 정엽, 양대복, 하맹보, 김점 등 호남지역 젊은 선비들을 만나 학문과 시국을 논의했다. 최경회는 조선 중기 시인이자 서예가로 이름이 높은 백광훈과 같은 인재를 배출한 송천 양응정에게 3년간 글을 배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