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거리 두기의 결정적인 의미에 대하여
2021년 03월 15일(월) 08: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사회적 거리 두기’일 것이다. 이 생소한 표현은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면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상황적 산물이다. 이제 거리 두기는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는 최선의 처방이자 이 시대의 기본 질서가 되었다.

이 단순한 행동 방식을 통해서 잊고 살던 우리의 자만과 무지를 돌아보게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그저 작아질 수밖에 없으며 특별한 존재이기는커녕 지구상의 사는 여러 종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이 쉬운 일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별 생각이나 의식 없이 해 오던 일을 이제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동안 해 오던 모임이 꼭 필요한지, 만나면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뺄 건인지 등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거리 두기는 또 다른, 훨씬 본질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관계에 관한 새로운 태도와 시선이다. 아무 의심 없이 눈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습관을 통해서 보고 듣는다. 다시 말하면 습관에 의해서 굳어진 방식으로 눈과 귀 그리고 생각의 틀마저 길들여져서 자동화된 방식으로 의식하고 판단한다.

여기에서 자신이 보는 것이 실체적 전부라고 믿는 습관이 현상에 대한 최종 해석을 규정하고, 그 너머의 은폐된 부분은 볼 수 없게 한다. 습관은 특별한 선물을 주면서 쉽게 견고해진다. 안락한 익숙함과 친밀함, 편안함이 습관의 힘이자 선물이다. 반면에 거리 두기는 익숙한 것에 대한 거부이며, 친숙한 것마저 낯설게 보는 불편한 태도이다.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로 잘 알려진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도 ‘거리 두기’를 말한 바 있다. 그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대상을 낯설게 보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거리 두기는 연극의 기법으로, 또한 현상 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집어내고 세상일에 대한 습관적 시선을 차단하는 태도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 효과는 탁월한 힘이며, 예술의 지향점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오히려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의 감정이입을 냉정하게 차단한다. 관객은 등장인물과 자신을 혼동하지 말고, 거리 두기를 하라는 것이다. 관객의 자리는 결코 무대 위가 아니며, 관객답게 객관적 입장에서 비판적 시선으로 보이는 것을 보라고 말한다.

감정을 이입하고 자신을 다른 누군가와 동일시하면 눈앞의 상황에 대한 의문과 비판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브레히트는 이런 감정적 정서적 동일화를 막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썼는데 공연에 내건 현수막이 그 예다. “그렇게 낭만주의적인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지 마시오!” 이 날카로운 지적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것은 현실의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에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낭만적 감정에 취하면 ‘내 편’에게는 자동화된 눈과 귀를 사용한다. 내 편은 그냥 옳고 억울하며 영원한 희생자다. 상대편은 무조건 부당하며 가해자이고 혐오 대상이다. 낯설게 보기와 거리 두기는 현상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차단하고 자동화된 인식의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 당연한 것을 혼동하지 않고, 편한 것과 옳은 것을 뒤섞지 않으며, 현상과 본질을 뒤바꾸지 않기 위한 시선과 태도의 거리 확보다. 습관과 관행이라는 괴물이 조직과 집단의 논리와 힘으로 무장될 때 우리 스스로가 그저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괴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모든 현상과 상황은 마치 어둠의 터널에 갇힌 듯이 보인다. 그래서 더욱 아감벤의 “절망이 만들어 낸 용기를 생각해야 한다”를 인용할 필요를 느낀다. 이 용기는 현실에 대한 내 편과 상대편이라는 자동화된 시선을 넘어서고, 현실을 기만하는 습관적 대안 찾기 대신 익숙하고 편한 모든 것에 대해서 ‘낯설게 보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브레히트의 시 한 구절을 낯설게 읽어 보자. “십 년마다 한 명씩 위인이 나온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이건 또 어떤가?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니… 평범한 것들이 나를 먹어 치우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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