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세계로병원 대표원장] 네 탓이오, 내 탓이오!
2021년 03월 11일(목) 07:00 가가
90년대 후반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천주교 계열 라디오 방송국 캠페인이었던 ‘내 탓이오’ 홍보 스티커를 당시 승용차 뒷 유리창 중앙 하단에서 자주 본 기억이 있다. 물론 필자는 천주교나 기독교 계열의 종교적 관련이 없어서 그랬는지, ‘내 탓이오’의 기원이나 출처에 대해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 의미를 찾아보거나 추가적인 사색을 해 보지 못했다. 다만, 좋은 문구와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 홍보물 정도라고 여겼었다.
그리고 한참 뒤, 이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의과대학 정신과 수업에서 다시 이어졌다. 프로이드(Freud)의 정신 심리학에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정신적 충격을 완충하는 방식) 중 한 가지인 ‘투사’(projection)에 관한 내용이었다. ‘투사’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이나 욕구를 외부로 돌려버리는 심리인데, 예를 들면 자신의 실수로 유리컵을 깨뜨린 아이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경우이다.
이렇게 핑계를 찾으면, 외부 충격에 대하여 자신의 안정적 정신 세계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사가 반복되는 불완전한 심리가 계속되면 정상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어렵고, 심한 경우 망상(delusion: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생각)의 정신 병증으로 이어지는 위험성이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또 직장 생활에서 회사나 어느 조직이든지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일 처리의 과정에는 구성원들 간의 협업과 토의, 역할 분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의료계 현장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래서 의학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인 상급자 전공의가 신입이나 인턴 선생님을 호되게 야단치는 것은 그 결과의 중대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변명을 한다.
필자도 정형외과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하루하루를 버텨 내던 시기에 수많은 경험들이 있지만, 나중에 느낀 점은 어떤 사건의 책임은 누구 한 사람의 몫은 아니고 모두의 탓이므로, 항상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공의 1년차 때에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가 교수나 치프(수석 전공의)에게 제때 보고를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는데, 치프를 맡으면서 환자의 문제는 보고를 받고도 올바르고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지 못해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나의 잘못이라는 자책이 들었다. 그러다 교수가 되어보니, 이젠 환자에게 안 좋은 상황이 돌발하면 처음부터 수술적 치료를 결정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하는 의문, 아니면 수술 자체가 뭐가 잘못되었나 하는 고뇌를 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회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문제라도 각각 연관된 사람들의 책임이 있는데, 서로 네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처럼 법적인 책임과 금전적 손해가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을 모두 터놓고 이야기해 보면, 상대방에 대한 가혹한 비난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진실과 상식에 맞춰 양보하고 타협하면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 상대방도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려와 소통의 문화가 필요하다. 특히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이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는 따뜻한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 경제로 발전하면서 사회 구조도 한층 고도화·정형화되고 양극화되면서 세대별·계층간 갈등과 개개인의 이해에 따른 분쟁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과 파국의 사건들도 자주 뉴스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이 바로 소통과 상대에 대한 배려인데, 그 시작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내 탓’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사회 행복 지수가 높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필자도 정형외과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하루하루를 버텨 내던 시기에 수많은 경험들이 있지만, 나중에 느낀 점은 어떤 사건의 책임은 누구 한 사람의 몫은 아니고 모두의 탓이므로, 항상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공의 1년차 때에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가 교수나 치프(수석 전공의)에게 제때 보고를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는데, 치프를 맡으면서 환자의 문제는 보고를 받고도 올바르고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지 못해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나의 잘못이라는 자책이 들었다. 그러다 교수가 되어보니, 이젠 환자에게 안 좋은 상황이 돌발하면 처음부터 수술적 치료를 결정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하는 의문, 아니면 수술 자체가 뭐가 잘못되었나 하는 고뇌를 하게 되었다.
이렇듯 사회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문제라도 각각 연관된 사람들의 책임이 있는데, 서로 네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처럼 법적인 책임과 금전적 손해가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을 모두 터놓고 이야기해 보면, 상대방에 대한 가혹한 비난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진실과 상식에 맞춰 양보하고 타협하면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 상대방도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려와 소통의 문화가 필요하다. 특히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이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는 따뜻한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 경제로 발전하면서 사회 구조도 한층 고도화·정형화되고 양극화되면서 세대별·계층간 갈등과 개개인의 이해에 따른 분쟁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과 파국의 사건들도 자주 뉴스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이 바로 소통과 상대에 대한 배려인데, 그 시작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내 탓’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사회 행복 지수가 높아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