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바’와 ‘짬밥’
2021년 02월 24일(수) 05:00
어느 50대 직장인이 사무실에서 겪은 이야기다. 부장인 그는 어느날 20대 여직원이 “오~ 짬바 좀 나오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됐다. 짬밥이라고 알아들은 그는 “에이~ 내가 이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당연히 짬밥이 있지”라고 의기양양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웃으면서 “짬밥이 아니고 짬바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신조어라는 것을 눈치챈 그는 “그래 짬바, 내가 언제 짬밥이라고 했나”라며 겸연쩍게 웃어 넘긴 후 인터넷에서 짬바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Vibe)’의 줄임말이다. 오랜 경력이나 경험이란 의미의 ‘짬’과 분위기나 느낌을 뜻하는 ‘바이브’의 합성어로 ‘베테랑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말한다.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멋진 행동을 할때 흔히 ‘짬바가 있다’라고 표현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유명 래퍼가 자신의 경력이 오래됐음을 강조하면서 사용한 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게 됐다.

군대 용어인 짬밥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짬밥이 그냥 경력만 오래된 것을 가리켜 낮춰 부르는 말이라면, 짬바는 베테랑의 전문가적 식견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세대들이 짬밥 대신 굳이 짬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데는 기성세대와 차별화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낯선 신조어에 스트레스를 받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일상생활은 물론 인터넷과 심지어 지상파 방송에서도 뜻 모를 신조어가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쓰며 과시하다’는 의미의 ‘플렉스’는 이미 일반화됐고 ‘머선 129’(무슨 일이야?) ‘스불재’(스스로 불러 온 재앙) 같은 용어도 빈번하게 쓰인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등장한 ‘슬세권’(슬리퍼를 싣고 다닐 정도의 동네 상권), ‘확찐자’(코로나가 낳은 비만), ‘브이노믹스’(바이러스가 바꾸어 놓은 경제)는 언론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일반화되고 있다.

신조어는 트렌드를 보여 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라떼 세대’(기성세대)와 구분 짓고 싶어하는 신세대들의 신조어 사용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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