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현악사중주, 네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2021년 02월 22일(월) 08:00
절기상 봄으로 접어드는 ‘우수’인데도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던 지난 18일 저녁 모처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아벨 콰르텟’의 현악사중주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주 시작 전, 예외 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청중들이 방역 조치에 따라 자리를 띄어 앉은 객석의 풍경은 클래식 연주회장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함께 다소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무엇, 클래식 연주회 선택의 기회가 1년째 부쩍 줄어든 상황에서 어렵게 연주회장을 찾은 애호가들의 무대를 향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이윽고 무대 위에 악기를 들고 등장한 네 명의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어느 때부터인가 관현악 연주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연주자들의 모습에 익숙해지고야 말았지만, 안전을 위한 조처이기에 이해하면서도 연주자의 호흡이 어려울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청중의 입장에서도 집중이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사중주, ‘5인 이상 집합 금지’인 시대에 다행히도 네 사람이다. 음악회를 보며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혼자서 쓴웃음을 짓다가 이내 모든 상황을 잊고 이들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모처럼 라이브로 듣는 실내악 연주라 더 그랬겠지만, 어떤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의 현악사중주 연주가 해소해 준 그 ‘갈증’이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좋은 연주를 듣고 싶다는 ‘문화적 갈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농밀한 만남과 대화에 대한 갈증이랄까. 물론 모든 음악이 만남과 대화를 표상하지만, 현악사중주는 그 가운데서도 독특한 면모가 있다. 예컨대 대규모 관현악의 교향곡 연주는 연주자들 사이의 대화라기보다는 지휘자라는 대표자를 통해 청중에게 공표되는 집단 성명에 가깝다. 협주곡은 ‘콘체르토’(concerto)라는 원어의 뜻에 이미 담겨 있듯이 영웅적 솔로 연주자와 관현악단 사이의 경쟁과 경합, 나아가 한판 대결이다. 이미 일상 속에서 일방적 공표, 경쟁과 경합에 시달려온 터. 그와는 다른 사회적 관계에 대한 청각적 표상이 내게 필요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사람의 음악적 대화, 현악사중주가 그 정답이었다.

현악사중주는 서로 닮은 바이올린 족(族)의 세 가지 악기 네 대로 조합된, 즉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첼로의 합주 형태다. 이보다 악기 수가 많아지면 리더의 권위가 불가피하게 요구되며, 이보다 수가 적어지면 온전한 화음을 내기 어려워진다. 요컨대 현악사중주는 수평적 관계 맺기를 전제하는 최상의 연주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수준 높은 현악 사중주단이 결성되기도, 유지되기도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뛰어난 솔로 현악기 연주자 네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현악 사중주 연주를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파트에 한 사람뿐이니 각자 솔로 연주자와 다름없는 최상의 연주 기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세 연주자들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으며 전체 화음을 조율해 낼 수 있어야 한다. 한데 이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동료에 대한 배려와 인내심이다.

물론 어느 유명 현악사중주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 묘사되었듯이 같은 종류의 악기를 쓰는 두 바이올린 주자 사이에 위계적 관계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 좀 더 선율을 주도하기 마련인 퍼스트 바이올린에 무게가 실리는 문제다. 이런 낡은 갈등적 요소에 대응해 최근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은 전체 앙상블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불사하고라도 퍼스트와 세컨드를 필요에 따라 교대로 맡곤 한다. 이날 금호아트홀의 연주에서도 아벨 콰르텟은 1부와 2부에서 두 바이올린 주자가 퍼스트와 세컨드를 교대로 맡았고, 앙코르 연주 중에도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이날 아벨 콰르텟의 연주는 슈베르트의 단악장 현악사중주 곡으로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카논 주제를 네 악기가 차례로 연주하는 도입부부터 계속된 네 악기의 대화는 연주회 끝까지 치열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이어졌다. (‘따뜻하게’와 관련해서는 이날의 연주회 제목이기도 했던 ‘안단테 칸타빌레’,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의 느린 2악장을 유튜브에서 직접 찾아 들어보시기를!) 이런 사운드의 합이 그저 반복되는 연주 연습만으로 이루어질 리 없다. 리허설과 일상의 경계에서 끝없는 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네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