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의 적들’
2020년 12월 21일(월) 05:00 가가
1997년 서른셋의 나이에 요절한 작가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바보 멍청이야. 열리긴 뭐가 열렸다는 거야. 다 닫혔어, 다 닫혔다구.” 소설은 90년대 시위 현장에서 일어난 두 집단의 대립을 모티브로 한다. 논리와 합리를 앞세운 대책반과 단순하면서도 과격한 행동을 주장하는 ‘밥풀때기’(부랑자 집단)와의 대결이 전체 줄거리다.
작가는 외형상 열려 있지만 안으로는 폐쇄된 사회를 주목한다.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는 밥풀때기들이 적일 수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그려진다. 이 같은 관계는 허구를 넘어 우리 사회 여러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 규범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할 때, 역설적으로 동지와 동료가 ‘열린 사회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랑과 자비를 추구하는 종교계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은 더더욱 그렇다. 최근 20년간 아동의 성을 착취한 혐의로 고소당한 경기도 어느 목사는 영적 돌봄을 핑계로 만행을 저질렀다. 위장 전도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청춘을 빼앗은 신천지의 포교 방식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월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종교의 자유를 넘어 우리 헌법과 법질서가 허용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위법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불교계에서는 얼마 전 남산타워가 보이는 자택을 공개해 ‘풀(full) 소유’ 논란에 휩싸였던 혜민 스님이 종단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우리 사회는 오랜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뤘다. 많은 부분에서 열린 사회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닫힌 사회’로 남아 있는 집단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김소진의 소설 제목은 철학자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따왔는데, 칼 포퍼는 ‘마술적인 위력에 순종하는 부족적인’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정의했다. 우리 사회에서 열려 있으나 여전히 닫힌 사회라면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혹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여전히 특권에 안주하려는 검찰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이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