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그림 ‘호작도’ 소박한 ‘집과 아이’ 한폭의 미술관이 되다
2020년 11월 30일(월) 10:00
(1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 ‘집과 아이’에서 영감을 얻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최-페레이라건축사무소가 설계한 장욱진미술관은 2014년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했다. (사진=장욱진미술관 제공)

화창한 가을 어느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계명산 자락에 자리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하 장욱진미술관)을 찾았다. 오전 일찍 광주에서 출발했는데도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니 어느덧 오후 3시를 훌쩍 넘겼다. 장흥아트파크와 이웃해 있는 장욱진미술관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 화백의 예술세계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4년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손잡고 설립한 미술관이다.

장욱진미술관은 매표소를 지나면 전시실로 이어지는 여타 미술관과 달리, 조각공원과 구름다리를 지나야 만날 수 있다. 2015년부터 조각공원과의 통합운영으로 조각공원의 매표소를 주출입구로 이용하면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개천과 구름다리 덕분인지 특별한 ‘공간’에 들어온 것 처럼 색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미술관은 마치 ‘언덕 위의 하얀집’을 연상케 할 만큼 빼어난 건축미를 뽐낸다. 파란 가을 하늘과 순백의 건축물이 빚어낸 아우라는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현대적인 감각의 외관과 한옥을 떠올리게 하는 이색적인 구조는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미술관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설계가 돋보인다. 전체 건물의 높이나 윤곽이 계명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거스리지 않는 데다 수직·수평의 단순한 형태 대신 얼기설기 걸쳐 있는 듯한 동선으로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상공에서 바라본 미술관 모습.
양주시의 치열한 공모심사를 거쳐 설계를 맡은 최-페레이라 건축(대표 최성희)은 심플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 대지면적 6204㎡, 연면적 1852㎡ 규모의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2층 전시실과 영상실, 강의실, 아카이브 라운지 등을 갖췄다. 부부건축가인 최성희씨와 로랑 페레이라는 장 화백의 정신을 미술관에 투영하기 위해 작품도록을 보면서 설계작업을 했다고 하다. 이 때문에 미술관은 위에서 보면 대표작인 ‘호작도’(1984) 속의 호랑이 같고, 지상에서 보면 ‘집과 아이’에 나오는 소박한 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중에서 미술관의 메인 공간인 전시실은 그의 그림을 빼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전시공간은 사각형의 화이트큐브이지만 장욱진미술관은 네모 반듯한 형태에서 벗어난 둔각이거나 예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구조와 화이트 톤의 세련된 분위기가 인상적인 미술관 내부 계단.
미술관에 들어서면 전시공간과 카페공간이 중정으로 연결돼 있다. 전시실이나 강의실 등 각 방의 모양이나 높이도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계단이다. 난간의 꺽인 각도가 조금씩 다르고 계단과 계단 사이로 보이는 삼각형의 공간이 화이트톤의 내부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미래지향적인 감각을 느끼게 한다.

장욱진미술관의 또 다른 매력은 유리창이다. 1, 2층이 연결된 대형 유리창이 전시공간에만 3개나 있고 계단 등 곳곳에 작은 유리창을 내 자연채광을 즐길 수 있다. 설계자의 바람대로 ‘집과 아이’의 주인공처럼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꿈꿨던 장욱진미술관은 개관과 동시에 ‘김수근 건축상’(2014년)을 수상한 데 이어 영국 BBC의 ‘새로 문을 연 세계 8대미술관’에 선정되는 등 쾌거를 거뒀다.

장욱진미술관의 진가는 230여 점에 달하는 컬렉션에서 빛을 발한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으로 부터 기증받은 벽화 ‘동물가족’, 유화, 판화, 먹그림과 지난 8월 구입한 대표작 ‘집과 아이’, ‘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벽화는 작가가 경기도 덕소 화실 벽에 그렸던 그림으로, 벽 자체를 떼어내 미술관의 2층 영상실 입구에 그대로 옮겨와 영구 전시하고 있다. ‘집’과 ‘가족’은 평생 장 화백이 추구했던 주제로 미술관의 조형적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장욱진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
전시장을 둘러보면 대작 보다는 30호 미만의 소품들이 많이 눈에 띄는 데 여기에는 그의 남다른 예술철학이 있다. “회화에 있어서의 회화성은 30호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하면 규모가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지고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한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1974년 ‘세대’ 6월호)

1971년 충남 연기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장 화백은 1926년 보통학교 3학년 당시, 전일본소학생미전에 까치그림을 출품해 1등상을 받는 등 탁월한 재능을 뽐냈다.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한 그는 1947년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해 미술운동을 주도했다. 30대에 겪은 6·25 전쟁의 비극은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은 작품을 천착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1·4후퇴 때 고향에 머물며 작업하는 동안 색감이 선명해지고 형태가 간결해지는 등 변화된 화풍을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부임하지만 재직 6년만에 교수직을 사임한 후 덕소에 화실을 마련해 자연과 더불어 새벽의 적막감을 즐겼다. 1990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용인에서 지낸 마지막 5년간 평생에 걸쳐 그린 720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20여 점을 그렸다고 한다.

지난 10월27일 개막한 서거 30주년 기념 ‘강가의 아틀리에’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소의 작업실에 포커스를 맞춘 전시회다. 화목한 가족과 안식을 상징하는 집은 장 화백에게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아이와 여인, 자화상 등 인물의 초상을 단순화한 필치로 그린 그의 작품들은 동화 같은 따뜻하면서도 환상적인 여운을 준다. 단순히 심플한 그림이 아니라 그 속에는 대상을 상징적인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세련미로 완성도를 높였다.

덕소의 작업실은 그에게는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흔히 그의 작품 세계를 구분 할때 작업실을 기준으로 덕소시대(1963∼1975년), 서울 명륜동시대(1975∼1979년), 충주 수안보시대(1980∼1985년), 용인 신갈시대(1986∼1990년)로 나눈다. 이 가운데 덕소는 장 화백이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물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기로, 이 곳의 강가는 자연을 함축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대표작 36점 이외에 그의 예술정신을 이어받은 김희원·박희자·빈우혁의 작품이 함께 선보였다.

조현영 장욱진미술관장은 “충남 출신이지만 이곳에 미술관이 건립하게 된 건 12년 간 덕소에 머물며 창작생활에 매진했던 남다른 인연이 계기가 됐다”면서 “서거 3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을 비롯해 장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념하는 다양한 상설전, 레지던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경기도의 대표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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