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모작 시대
2020년 11월 04일(수) 06:00

박 행 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연령상 고용 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법’은 50~54세를 준고령자,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분류하였다. 만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던 때, 노후 대비 관심사는 주로 건강과 돈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60세는 장수를 축하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이다. 현 시대에 맞게 유엔이 정한 나이 분류에 의하면 18세에서 65세까지는 청년, 66세부터 80세 미만이 중년, 80세 이후를 노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엔의 분류가 어쩐지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 같이 들리기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 연령이 49.5세라는 것, 즉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다. 모 금융회사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50대 퇴직자의 65%는 퇴직 후유증을 앓는다고 한다.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에 노후 대비는커녕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돈이 가장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이는 오래 사는 것은 ‘저주’라 하지만 전통적 사고로 장수는 축복이고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생의 후 반세기,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이다. 건강과 돈은 삶에서 언제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퇴직 후의 삶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인생 2모작 또는 3모작을, 성급한 매체는 n모작을 들먹인다. 일반적으로 평균 퇴직을 기준으로, 50~69세가 2모작, 70~89세를 3모작 시대로 구분한다. 다모작 시기에는 자립 경제, 취미, 봉사 활동, 평생 학습의 욕구 외에 육신 뿐 아니라 정신 건강과 인생의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영적 관심도 깊어진다.

인터넷에 뜨는 ‘인생 삼모작-인생 나눔학교’가 눈길을 끈다. 프로그램중에 청소년들과의 상호 협력은 상생을 위한 좋은 시도이다. 지속적 학습, 독서, 봉사활동, 다양한 자격증 취득 등 어떻게 여생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보낼지에 대한 귀한 지침들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김형석 교수는 1920년생이다. 그는 ‘100세를 살아 보니’에서 60에서 75세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그는 집필과 강연 등으로 무척 바쁘게 살고 있다. 히노하라 시게아키(1911~2017) 박사는 104세에 쓴 ‘100세 시대를 살아갈 비결’에서 75세를 넘기면서 진정한 인생, 진정한 자신이 시작된다고, 그 전까지는 예비 인생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계획하는 일을 말로 표현하는 유언실행(有言實行)을 권한다. 장수인들의 공통적인 생활 양식은 소식(小食)과 부지런함이다. 두 백세 노장들도 예외가 아니며 특히 일부러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린다는 대목에서는 일반 상식을 도전받는 느낌이 든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지 지난 세월은 성공뿐 아니라 실패와 좌절도 축적된 자산이고 고유하고 특별한 스펙이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의 모지스(Moses, 1860∼1961) 할머니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관절염으로 인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76세에 시작하여 25년간 그린 1600여 점의 세밀화에는 그녀의 유년 시절부터 나이만큼이나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경로당 숫자가 꾸준히 늘어서 2019년에 6만 60737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노인 복지 여가 시설들이 현 상태로 60대 이상의 장년들에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정부나 지자체의 경로당 지원금은 금액 대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경로당이 단순한 휴식 공간 개념을 넘어서 인생 3모작 시대에 걸맞은 생산성과 의미를 창출하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때이다.

100세 시대는 다른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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