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어불마을] “억대 고소득·넘치는 인심…귀어 안할 이유 있나요”
2020년 09월 12일(토) 10:00 가가
섬주민 218명…40세 이하가 91명에 이르는 ‘남도에서 가장 젊은 섬’
쫄깃한 식감과 영양가 높은 전복·갯벌 품은 바다에서 길러낸 김 자랑
교통 여건 개선과 정보·통신발달…도시와 물리·심리적 거리 좁혀져
쫄깃한 식감과 영양가 높은 전복·갯벌 품은 바다에서 길러낸 김 자랑
교통 여건 개선과 정보·통신발달…도시와 물리·심리적 거리 좁혀져
해남의 작은 섬 어불도(於佛島)의 명물은 전복과 김이다. 마을 앞 기름진 바다에서 어민들이 키워낸 전복은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영양가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는다. 모래밭이 아닌 갯벌을 품은 바다에서 길러낸 김 역시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완도 김’의 위상을 넘본다.
섬마을 주민들은 전복과 김을 명물로 꼽지만, 어불도의 진짜 명물은 청년 어업인들이다. 섬 전체 주민 218명 가운데 40세 이하가 91명에 이를 정도여서 ‘남도에서 가장 젊은 섬’으로 통한다. 전남 농어촌 대부분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현실이지만 어불도에서는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어불도가 젊어지기 시작한 것은 고향을 등졌던 청년들이 찾아들면서다.
주민들에 따르면 어불마을로 귀어하는 청년들이 생겨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10~20대 시절 학업과 취업을 이유로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갔던 청년들이 하나둘 고향 마을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산 수산물 수요 증가로 어촌 소득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교통과 정보통신 발달로 도시와 어촌의 거리가 좁혀진 것이 청년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인 요인이 됐다.
고일문(37)씨의 경우 지난 2005년 귀어했다. 장성에서 고교를 마치고 군에 다녀온 그는 곧장 고향 어불도로 돌아왔다. 마을 앞바다에서 전복 양식장을 일구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귀어 초반 부자는 김과 전복 양식을 병행하다 이제는 전복에 집중하고 있다. 7년 전에는 도시에서 일하는 남동생도 고향 마을로 내려와 일손을 돕고 있다. 950칸(1칸은 2.5m 정사각형 크기) 가두리 양식장에서 올리는 1년 매출은 약 5억원 안팎. 양식업에 뛰어든 초기, 벌이는 적고 갚아야 할 투자비가 많아 허덕였던 고난의 시기를 이겨낸 지금, 부자는 매년 2~3억원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올리고 있다고 한다. 사업이 안정을 찾아가는 사이 고씨는 결혼을 하고 아내와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뒀다.
목포에서 자란 김홍택(27)씨는 지난 2012년 고향으로 귀어한 아버지를 뒤따라 5년 전 어불도로 귀어했다. 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수산 양식을 공부한 ‘수산 엘리트’다. 500칸 규모의 전복 양식장에서 부자는 연매출 3억원을 올린다. 인건비·자재비 등 경비 1억원 안팎을 제외한 나머지가 수익이다.
김씨는 “섬에 오니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다. 그런데 차츰 전복 양식장이 자리를 잡고 소득을 올리다 보니 섬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신재광(39)씨, 광주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임창범(32)씨도 모두 전복 양식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10대 시절부터 인생을 고향 마을 앞바다에 건 청춘도 있다.
김도연(22)씨가 주인공이다.
어불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해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완도수산고에 진학했다. 현재는 전주에 소재한 국립 한국농수산대학 수산양식학과 졸업반 재학중이다. 김씨는 “고향 마을 앞바다에 제 인생을 걸기로 아주 어려서부터 마음먹었다. 수산고와 수산대로 진학한 것도 바다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졸업 후 어불도로 내려오면 아버지 전복 양식을 돕고 전복 판로를 다각화해 소득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해남 땅끝 섬마을 어불도에 청년들이 찾아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불도 청년 어업인들은 “일단 돈이 된다. 타향살이보다 소득이 월등하니 고향 마을로 내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말 그대로 넥타이 맨 회사원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전복 양식이 잘되는 곳이라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고 일을 배우고 양식 규모를 늘려가면 금세 억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어불도 청년 어업인들의 설명이다. 교통 여건 개선과 정보·통신 발달로 도시와 어촌 간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심리적 거리가 좁혀진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청년 어업인 임창범씨는 “단적인 예로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선 TV를 틀면 KBS, MBC만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채널이 수백개가 나온다. 각종 기술 발달로 도시와 어촌의 격차가 이전 보다 좁혀지면서 이제는 섬에 살아도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귀어 15년 차 고일문씨는 마을 어른들에게서 답을 찾았다.
“바다를 (어촌계원) 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희 마을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있다면 주민 모두가 주인이죠. 도시로 떠나갔던 청년들이 어불도로 돌아오는 이유가 저는 이것 때문이라고 봐요. 어촌계장님을 비롯해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이 열려 있어 이제 막 귀어한 청년에게도 어업 면적을 충분히 나눠줍니다. 몇 년만 고생하면 양식으로 억대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인심 좋은 어르신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어촌을 외면할 청년들이 있을까요?”
/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
주민들에 따르면 어불마을로 귀어하는 청년들이 생겨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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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어불도 선착장에서 어린이 두 명이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 어불도에는 2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절반에 가까운 91명이 40세 이하일 정도로 젊은 섬이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목포에서 자란 김홍택(27)씨는 지난 2012년 고향으로 귀어한 아버지를 뒤따라 5년 전 어불도로 귀어했다. 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수산 양식을 공부한 ‘수산 엘리트’다. 500칸 규모의 전복 양식장에서 부자는 연매출 3억원을 올린다. 인건비·자재비 등 경비 1억원 안팎을 제외한 나머지가 수익이다.
김씨는 “섬에 오니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다. 그런데 차츰 전복 양식장이 자리를 잡고 소득을 올리다 보니 섬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신재광(39)씨, 광주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임창범(32)씨도 모두 전복 양식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10대 시절부터 인생을 고향 마을 앞바다에 건 청춘도 있다.
김도연(22)씨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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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송지면 어불도 선착장 배에서 어민들이 전복과 김 양식 준비를 하고 있다. 선착장에 쌓인 줄은 전복 먹이로 쓸 미역과 다시마를 길러내는 데 쓰인다. 어린 다시마 등을 줄에 돌돌 감아 바다에서 키운 후 전복 먹이로 준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해남 땅끝 섬마을 어불도에 청년들이 찾아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불도 청년 어업인들은 “일단 돈이 된다. 타향살이보다 소득이 월등하니 고향 마을로 내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말 그대로 넥타이 맨 회사원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전복 양식이 잘되는 곳이라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고 일을 배우고 양식 규모를 늘려가면 금세 억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어불도 청년 어업인들의 설명이다. 교통 여건 개선과 정보·통신 발달로 도시와 어촌 간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심리적 거리가 좁혀진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청년 어업인 임창범씨는 “단적인 예로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선 TV를 틀면 KBS, MBC만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채널이 수백개가 나온다. 각종 기술 발달로 도시와 어촌의 격차가 이전 보다 좁혀지면서 이제는 섬에 살아도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귀어 15년 차 고일문씨는 마을 어른들에게서 답을 찾았다.
“바다를 (어촌계원) 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희 마을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있다면 주민 모두가 주인이죠. 도시로 떠나갔던 청년들이 어불도로 돌아오는 이유가 저는 이것 때문이라고 봐요. 어촌계장님을 비롯해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이 열려 있어 이제 막 귀어한 청년에게도 어업 면적을 충분히 나눠줍니다. 몇 년만 고생하면 양식으로 억대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인심 좋은 어르신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어촌을 외면할 청년들이 있을까요?”
/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