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감성 요즘 갬성] 순천의 소문난 레트로 명소를 가다
2020년 09월 07일(월) 19:16

순천드라마촬영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달동네세트장. 지난 2006년 리메이크된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무대로 활용됐던 곳이다.

레트로 열풍이 이어지면서 지난 시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복고풍’ 명소들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고유의 생활용품과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에서 부터 1960~90년대의 시대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오래된 주조장과 창고,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재래시장까지 다양하다. 이들 레트로 공간의 특징은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트렌디한 감각을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칙칙하고 낡은 장소에서 따뜻하고 화사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레트로 명소에서 색다른 감성을 즐겨 보자.



순천드라마촬영장의 ‘순양극장’앞에서 교복차림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정겹다.


#순천드라마촬영장

“헬로 헬로 미스터 몽키~” .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자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 나온다. 1970년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걸그룹 ‘아라베스크’의 ‘헬로 미스터몽키’다. 순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카세트 테이프로 자주 들었던 중학생 시절의 정겨운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실제로 그때 그시절이 눈앞에 펼쳐진다. 70~80년대 교복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여기 저기서 인증샷을 찍느라 바쁘다. 단발머리 대신 긴머리를 늘어뜨린 20대 여성 2명이 ‘순양극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올드 팝송이 흐르는 음악감상실에서는 장발머리에 나팔바지차림의 청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극장 옆에 자리한 추억여행관에서 교복을 빌려 입은 이들은 주로 젊은이지만 종종 교련복을 입은 중년 남성들도 눈에 띈다.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7080년대의 ‘갬성’에 푹 빠진 방문객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방문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는 순천 드라마촬영장의 여름날 풍경이다. 이곳에선 누구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 2006년 조성된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이름 그대로 드라마 세상이다. 시멘트벽에 붙여놓은 쥐잡기 포스터, 고장난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TV라듸오 쎈타 승광전기’, 주단·비로도·곱단을 판매하는 진성포목점, 구멍가게 진열장의 유리 미닫이문, 주근깨 투성이의 못난이 인형…. 이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추억속의 사소한 일상들이 한자리에 옹기 종기 모여 있다. 광주, 전남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드라마 촬영장 입구에 자리한 청춘사진관.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스타작가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의 촬영이 모태가 돼 세상에 나왔다. 1987년 주말연속극으로 처음 방송돼 국민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던 동명의 작품을 지난 2006년 리메이크한 게 계기가 된 것. 드라마는 1960년 부터 1990년대 중반을 무대로 성격이 정반대인 두 형제가 겪는 인생역정과 가족사를 다뤘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 순천읍내여서 순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 때문에 순천드라마 촬영장에는 순천 시내와 주인공이 서울로 올라가 살게 된 달동네, 1980년대 서울변두리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1960년대 순천의 옥천 냇가와 읍내거리, 누추한 대폿집의 세트장에서는 당시 서민들의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하다.

드라마촬영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언덕 위쪽에 재현된 달동네 세트다. 멀리 서도 한눈에 보이는 달동네의 누추한 집들이 마치 성곽처럼 펼쳐져 있는 데다 좁은 골목과 슬레이트지붕, 전봇대, 가로등까지 그 시절의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히 달동네 세트 옆에 꾸며진 ‘언약의 집’은 연인들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다. 3평 규모의 작은 건축물인 언약의 집은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며 영원을 약속하는 공간. 내부를 들여다 보면 방문객들이 낙서판에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글귀를 직접 작성해 벽에 걸 수 있는 전시공간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순천낙안읍성마을 길목에 들어서 있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이 잡지만은 빌려주지 마세요.” 지난 1986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5면에는 이색적인 문구의 광고가 실렸다. ‘샘이 깊은 물 ’4월호 발매를 알리는 광고카피였다. 광고는 ‘잡지를 빌려주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느새 ‘뿌리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의 전신)처럼 가장 많이 읽히는 잡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빌려주시면,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때묻고 해져 오기 십상이어서, 오래 간직하고 자주 꺼내 보시려는 독자는 생돈들여 보존판을 따로 사야 합니다. 게다가, 빌려주시지 말아야 발행부수가 계속해서 늡니다. 그리고 발행부수가 늘어야(많이 팔려야) 이 잡지의 내용을 끊임없이 더 살찌울 수 있습니다.” 잡지를 돌려 보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읽을거리가 귀했던 터라 잡지나 만화책을 돌려 보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그 시절 ‘샘이 깊은 물’은 인문과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여성에겐 필독서였다. 무엇보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진가는 콘텐츠였다. 특히 1976년 창간된 ‘뿌리깊은 나무’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표방했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건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1936∼1997) 때문이다.

순천 낙안읍성마을의 초입에 자리한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린 한창기 선생의 정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뜻깊은 공간이다. 보성 벌교 출신인 그는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 물’(1984∼2001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헌신했다. 평생 수집한 생활용품과 유물이 6500여 점에 달할 만큼 그의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다. 생전 전 재산을 털어 수집했던 유물을 고향에 전시하고 싶다는 유지를 기려 (재)뿌리깊은 나무가 순천시에 영구기탁한 게 계기가 돼 2011년 현재의 자리에 개관했다.

뿌리깊은 나무박물관은 연면적 1736㎡에 박물관 1동과 한옥 8동 규모로 유물 전시실과 야외전시 전통한옥으로 구성됐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 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청동기 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민속장에는 조선시대부터 쓰였던 계량도구에서 부터 제등, 신발, 이불 등 각양각색의 민속품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7월 박물관 한켠에 마련된 ‘한창기실’은 레트로 열풍을 타고 주목을 받고 있는 공간이다. 국내 최초의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인 ‘뿌리깊은나무’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중년층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선생이 생전에 사용했던 문구류ㆍ서적ㆍ책상 등으로 재현된 집무실, 발행했던 잡지와 단행본, 전통문화사업부의 자료, 개인유품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대한민국 잡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뿌리깊은나무’ 전권인 53권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순천=글·사진 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실시간 핫이슈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