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
2020년 09월 03일(목) 00:00
‘풍요 속의 빈곤’은 1996년에 나온 노래로 꽤 인기를 끌었다. 1990년에 나온 영화 ‘아비정전’에 삽입됐던 자비에 쿠거(Xavier Cugat)의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를 샘플링하고, 배우 장국영의 맘보춤을 따라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애사를 주제로 한 쉬운 가사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제목이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풍요 속의 빈곤’은 경제학 용어이기도 하다. 우선 수요 부족으로 생산 설비를 완전히 가동하지 못하면서 실현 가능한 생산을 달성하지 못할 때 빚어지는 빈곤을 말한다. 세계 공황의 해법을 제시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저축의 역기능에 주목, 비관적인 시장 전망으로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빈곤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부유한데 국민은 빈곤한 경우에도 사용됐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부통령인 존슨에게 “미국에서 전체 인구 중 6분의 1이 절대 빈곤에 머물고 있다”며 ‘풍요 속의 빈곤은 우리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역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분명 배고픔을 겪는 계층이 존재할 터인데도 ‘먹방 영상’이 인기를 끌고, 투기 세력과 건설업체의 이익을 위해 도시 곳곳이 고층 아파트로 뒤덮이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없지 않다.

각종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근거 없는 주장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난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우리는 또 그만큼 빈곤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거의 동시에 주장한, 동서양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중(中)이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 없이 꼭 알맞은 것을, 용(庸)은 언제나 변함없이 바른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기득권을 둘러싼 쟁투가 정계만이 아니라 법조계나 의료계 등 각 분야에서 이어지고 있다. 반추나 자제·절제는 찾기 힘들다. 중용의 도(道) 또한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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