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시골 생활 중 느낀 것들
2020년 05월 12일(화) 00:00

김지민 동신대 한의예과 2학년

의외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진 TV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자연 속에 사는 자연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며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아빠 옆에 앉아 한두 번 시청하다 보니 어느새 산속 자연인들의 삶에 매료되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동경도 점점 커져 갔다.

사실 어렸을 때는 시골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골 특유의 흙냄새와 퇴비 냄새가 싫었고 벌레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과자를 사러 마트에 가려면 30분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어렸던 나에게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도 벌레가 무서워 ‘빨리 집에 가자’며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이 있다.

시골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무너지면서다. 바깥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활동량이 줄어드니 몸이 더욱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학교로부터 1학기 수업을 모두 사이버 강의로 진행한다는 공지를 전달받고 “시골에 내려가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날 밤 짐을 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아빠와 함께 할머니 댁이 있는 시골로 내려오게 됐다.

함평의 어느 마을, 산 아래에 위치한 할머니 댁은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가족들이 텃밭을 가꿀 때에만 왕래하는 곳이기에 한적했다. 짐을 풀면서 시골에 내려온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지만 이왕 내려온 것 오랫동안 버텨 보자고 다짐했다.

자연은 잔잔하면서도 빠르게 내 생활 패턴을 바꿔놓았다. 광주 집에서는 아침 9시가 다 되어 일어나 부랴부랴 강의를 들을 때가 많았는데, 시골에서의 아침은 창호지 구멍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시작하기에, 늦어도 아침 7시에는 일어나게 돼 하루를 길게 사용할 수 있다.

시골은 고요할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아빠가 출근하면, 혼자 마루에 앉아 햇빛을 쐬며 멍하게 앉아 있거나 책을 읽는데, 풀잎이 바람을 따라 ‘쏴아’ 흔들리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주위의 적막을 채워 준다.

사과를 먹고, 씨가 있는 심 부분을 텃밭 옆에 잘게 잘라 내려놓으면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서 물어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멀리서 들리는 소들의 울음과 마당의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톡’ 떨어지는 소리는 도시의 차 경적 소리와는 달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잠시 공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식사 시간에는 잡곡밥에 집 뒤에서 뜯은 나물과 이웃 할머니께서 주신 재료들로 만든 반찬, 따뜻한 된장국을 먹는다. 가까운 곳에는 편의점도 없기에 자주 사 먹던 과자나 컵라면 같은 정크 푸드는 자연히 멀리하게 됐다. 입맛을 자극하는 피자, 파스타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속이 편해지는 음식들을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게 된다. 가끔은 밥을 먹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며 느리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거나, 논두렁을 따라 걸으며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을 본다.

멀찍이 세워진 가로등 외에는 밝은 불빛들이 없기 때문에 시골의 저녁은 암흑 그 자체이며, 하늘에 달과 별들만이 환하게 빛난다, 퇴근하신 아빠와 마을 산책을 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덥힌다. 방바닥이 데워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열기가 오래가기 때문에 그 다음날 아침까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느림의 미학은 시골 생활 전반에 더해 온돌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물론 시골에서 지내며 마냥 여유롭고 행복하지는 않다. 요즘은 꽃가루가 많이 날려서 마루에 쌓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빗자루로 마루를 쓸고, 벌레들이 항상 주위에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람 간 접촉 스트레스와 층간 소음으로 인한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관찰하며 힐링을 하는 날들에 만족하고 있다.

빠르고 간편한 조리가 가능한 정크 푸드를 멀리하면 현대인들이 그렇게 추구하는 건강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자연의 이러한 가치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고, 알고 있더라도 불편할까 봐 실천하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 역시 4개월 이후에는 다시 도시에 금방 적응해 원래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시골 생활을 통해 배운 소중한 가치들을 잊지 않고 싶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