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한다더니 노조측 한번도 안 만나…현대차 ‘먹튀’ 우려
2020년 04월 07일(화) 00:00
위기 의식 없이 강 건너 불구경
2대 주주 책임론 부상
노동이사 도입·추천이사 경질
사업 정상화 대승적 결단을

광주 빛그린 산단내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 공장 철골 구조물. /연합뉴스

‘광주형 일자리’는 새로운 노사상생과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요술 방망이 같은 사업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4월 광주 빛그린 산단에 1000cc 미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공장이 지어진다. 직·간접적인 신규 일자리만 1만20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 사업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근로자들이 주 44시간 근무에 기존 자동차업체의 절반 수준인 3000만원대(초임 기준) 연봉을 받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주거·교육·의료지원 같은 복리·후생 비용을 지원받는 것이다. 특히 근로시간을 최소화해 같은 인건비를 가지고도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까지 있다.

이 사업을 위해 지난해 8월 광주시와 현대차는 각각 1대 주주(483억원)와 2대 주주(437억원)로 참여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로 출범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공장도 착공해 8%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겉으론 순조로운 듯 하던 이번 사업은 지난 2일 노동계 불참 선언으로 스텝이 꼬였다. 벌써부터 사업 투자자들이 투자를 미루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이를 놓고 합작법인인 (주)광주글로벌모터스의 리더십이 결여된 무책임한 경영 행태, 그리고 기득권만 주장하며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하는 2대 주주 현대차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지역 사회에선 대화와 타협보다는 광주형 일자리의 시작점인 ‘노사상생발전 협정서’ 파기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노동계의 태도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광주의 미래를 책임질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우선 현대차 스스로 자신에게 쏠려 있는 ‘불신의 산’부터 없애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업엔 자기자본 2300억원과 차입금 3454억원 등 총 5754억원이 투입되는 데, 현대차의 투자금은 광주시보다도 46억원이 적은 437억원에 불과하다. 현대차의 사업 참여 범위도 관계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공장을 짓고, 현대모비스 등을 통해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고 완성차를 판매하는 것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대당 일정 금액을 받고 차량을 조립한 뒤 완성차를 현대차를 통해 판매하는 구조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현대차는 이 과정에서 적자 등이 발생할 경우 400억원대의 투자금을 포기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나머지 뒷감당은 고스란히 광주시와 주주, 시민의 몫이다. 현대차가 떠나면 자동차를 생산하더라도 현대차 로고를 달지 못하고 출시될 가능성도 있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현대차가 광주시민과 투자자의 돈으로 자동차 공장만 짓고, 수익이 안나면 ‘먹튀’를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 2일 광주형 일자리 사회적 협약 파기 선언식에서 “지금까지 사측인 현대차와 단 한차례도 만남을 갖지 못했다. 이게 무슨 노사상생형 사업이냐”면서 “노사간 의견교환 방식도 노동계 의견이 광주시를 통해 현대차에 전달되고, 현대차 답변도 광주시를 통해 노동계에 전달되는 식이다.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탄생했다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의 재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그들의 요구안을 수용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현대차가 모든 키를 쥐고 있어서다. 핵심인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대차는 물론 국내 대기업들의 반대도 거세기 때문이다. 자칫 광주형 일자리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모든 기업으로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게 한 경제계 인사의 설명이다.

원·하청 관계개선 시스템 구축은 현대차보다도 노동계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크게 대기업인 원청은 민주노총이, 하청인 중소기업은 한국노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구조인 탓에 양대노총간 영역 문제 등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추천 이사 경질도 현대차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나마 시민자문위원회 설치와 임원임금 노동자 2배 이내 책정 등이 조율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마저도 최근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와 부대표(부사장) 등 상임 이사의 통합연봉을 최대 3억8000만원으로 한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광주시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선 투자자와 투자 예정자들의 투자철회 등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지금으로선 현대차와 노동계의 대승적 결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진표 기자 luc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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