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 기술
2020년 03월 23일(월) 00:00 가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예정되었던 음악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공연은 온라인 생중계의 형식으로 청중들에게 선을 보인다. 토요일 오후 ‘네이버 라이브’로 생중계된 서울 돈화문국악당의 ‘운당여관 음악회’ 공연의 시청자 집계를 보니 1300여 명이었다. ‘국악’ 장르 공연이다 보니 시청자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실제 공연장의 좌석수가 140석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는 실제 라이브 공연을 했을 때보다 열 배 가까운 청중을 얻은 셈이다. 공들여 준비한 공연을 뜻하지 않게 텅 빈 공연장에서 진행하게 되었던 음악가들에게 한 줌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온라인 라이브 생중계는 음악가들에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그것도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티켓 수입에 대한 의존이 크지 않는 공연의 경우가 아니라면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온라인 공연 중계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역 음악 문화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국내의 어느 지방 도시 시립 교향악단이 예정된 공연들을 취소하는 대신 무관중 공연으로 온라인 생중계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SNS상에서 어느 애호가가 냉소를 던졌다. “시립예술단 공연이 ‘라이브’니까 보러 가는 거지, 인터넷상에서야 일류 연주 단체의 명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굳이 시향 연주를 찾아 들을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과 미국을 강타한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한 세계적 공연 단체들이 이미 홈페이지를 활용하여 온라인 공연 중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4월 19일까지 모든 공연이 취소된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우도 그동안 유료로 제공되던 온라인 공연 아카이브인 ‘디지털 콘서트홀’을 4월 한 달 동안 모든 네티즌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공연 취소 사태로 인한 중소 공연 단체들의 줄도산 위기라는 암울한 현실이 있지만, 온라인 음악 감상으로만 말하자면 음악 애호가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과학 기술이 그렇듯 디지털 매체 기술 또한 양면성을 갖는다. 이른바 ‘디지털 민주주의’에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한편, ‘능력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 점은 지역 문화와 관련해서도 지적할 수 있다. 디지털 매체 기술은 문화의 분권화와 ‘탈중심화’에 잠재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거꾸로 ‘중심화’를 가속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술을 어떻게 ‘탈중심화’의 방향으로 선용하는가에 있다. 그동안 디지털 매체와 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던 지역 공연계에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원래 ‘대면의 기술’을 발휘해야 했던 이들이 뜻하지 않게 ‘비대면의 기술’을 구사해야 하는 것은 공연계만의 현실이 아니다. 예컨대 대학이 또한 그렇다. 이번 학기 2주간 개강이 연기된 데 이어 추가로 2주간 비대면 원격 강의가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이 혼란이 수습되고 난 이후 더 큰 문제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원격 강의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 고등교육의 ‘중심화’를 가속화하고 지역 교육 환경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동영상 강좌와 원격 수업이 일상화될 경우 지역의 대학은 과연 어떤 강점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매체 활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일 뿐만 아니라, 이 기술에 내재된 ‘탈중심화’의 잠재력을 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활동과의 지속적 연계를 전제로 지역적 의제를 생산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 플랫폼들이 공연계와 대학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 생태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요구되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디지털 매체에 기반한 ‘비대면의 기술’을 장소에 기반한 ‘대면의 기술’과 긴밀히 연관시키는 것이다.
일상의 심미화와 관련되는 정치적 문제 제기와 토론, 상호 소통의 대화를 ‘비대면의 기술’과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 것인가?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그간 ‘비대면’이나 다름없었던, 상업화되고 사물화된 공연예술이나 교육이 관객이나 학생과의 새로운 ‘대면’을 통해 그 본연의 기능을 되찾기 위한 물음이기도 하다.
원래 ‘대면의 기술’을 발휘해야 했던 이들이 뜻하지 않게 ‘비대면의 기술’을 구사해야 하는 것은 공연계만의 현실이 아니다. 예컨대 대학이 또한 그렇다. 이번 학기 2주간 개강이 연기된 데 이어 추가로 2주간 비대면 원격 강의가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이 혼란이 수습되고 난 이후 더 큰 문제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원격 강의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로 고등교육의 ‘중심화’를 가속화하고 지역 교육 환경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동영상 강좌와 원격 수업이 일상화될 경우 지역의 대학은 과연 어떤 강점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매체 활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일 뿐만 아니라, 이 기술에 내재된 ‘탈중심화’의 잠재력을 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활동과의 지속적 연계를 전제로 지역적 의제를 생산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 플랫폼들이 공연계와 대학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 생태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요구되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디지털 매체에 기반한 ‘비대면의 기술’을 장소에 기반한 ‘대면의 기술’과 긴밀히 연관시키는 것이다.
일상의 심미화와 관련되는 정치적 문제 제기와 토론, 상호 소통의 대화를 ‘비대면의 기술’과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 것인가?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그간 ‘비대면’이나 다름없었던, 상업화되고 사물화된 공연예술이나 교육이 관객이나 학생과의 새로운 ‘대면’을 통해 그 본연의 기능을 되찾기 위한 물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