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5월 21일 ‘주먹밥과 헌혈’
2020년 02월 20일(목) 00:00 가가
서석동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시위차량에 올려주면서
동네 이름을 말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시장 상인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시위차량에 올려주면서
동네 이름을 말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시장 상인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최루탄 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졌다. 김준봉은 최루탄 가스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사무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무실 옥상에서 도청 앞은 보이지 않았다. 코를 막고 눈을 비비면서 겨우 금남로를 내려다보았다. 건물 아래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와 주씨요!”
한 청년이 피범벅이 된 국민학생을 붙들고 있었다. 김준봉은 옥상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느 새 도로에는 하얀 최루탄 분말이 허옇게 덮였고 시위대의 신발짝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 청년이 붙들고 있는 국민학생은 3,4학년쯤 돼 보였다. 김준봉은 어린 아이의 어깨를 들고 청년은 아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광주천변에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갔다. 적십자병원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부상자들을 싣고 오는 시위차량으로 병원 앞 도로는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젊은 의사가 나와 소리치며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준봉은 흥분한 젊은 의사에게 멱살을 잡혔다.
“피가 부족헌데 이짝으로만 환자를 데리고 오면 으쩝니까?”
“지가 어처케 도와드릴게라?”
“부탁드립니다. 헌혈차를 좀 도와주세요.”
“지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는디라.”
“우리 병원 직원들과 함께 허면 됩니다.”
젊은 의사가 김준봉의 멱살을 슬그머니 놓았다. 부상당한 시민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면서 사과를 했다. 김준봉은 적십자병원 헌혈승합차를 탔다. 헌혈차에는 병원남직원 1명, 간호사 2명, 운전기사 1명이 타고 있었다. 김준봉은 메가폰을 들고 헌혈을 독려하는 일을 했다.
<여러분, 피가 부족합니다. 광주시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헌혈을 해주십시오. 광주시민을 살립시다. 공수부대 총탄에 여러분의 아들딸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헌혈을 해주십시오.>
헌혈차는 적십자병원에서 가까운 곳부터 돌았다. 광주천이 흐르는 서석교를 지나 월산동을 한 바퀴 돈 뒤 양림동오거리 은혜약국 앞에서 헌혈차를 세웠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병원남직원이 줄을 세웠지만 서로가 먼저 헌혈을 하겠다고 팔뚝을 걷었다.
“술 마신 분들은 빠지시지라.”
김준봉은 낮술을 든 사내들을 돌려보냈다. 병원남직원이 김준봉에게 또 다른 일을 부탁했다.
“급히 나오느라 얼음을 준비허지 못해부렀소. 얼음 좀 구해올 수 있겄소?”
김준봉이 메가폰을 들고서 “얼음이 필요합니다!” 하고 소리치자, 주민들이 집으로 달려가 냉장고의 얼음을 가져왔다. 헌혈한 주민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다가 떨어지자, 김준봉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슈퍼마켓 주인이 고맙게도 제과회사 빵과 우유를 박스째 건넸다. 그리고 은혜약국 약사는 1회용 반창고와 헌혈차 요원들에게 식사를 배달시켜 주었다. 그때였다. 군용헬기가 나타나 사격지점을 찾는 듯 저공비행을 했다.
“헬기다!”
헌혈하기 위해 줄선 주민들을 시위대로 착각하는 것 같아서 병원남직원과 김준봉은 재빨리 헌혈차 지붕에 적십자 마크가 찍힌 흰 천을 씌웠다. 이윽고 헌혈차는 양림다리를 건넌 뒤 전대병원을 거쳐 지산동 법원 앞으로 갈 계획을 짰다. 전대치과대학 왼쪽 담 골목 어귀에서는 서석1동 반장과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큰 함지와 라면박스, 비닐 위에 가득 쌓아놓고 있었다. 시위대들이 지나가다가 마음대로 먹었다. 시위차량이 지나가면 주먹밥을 듬뿍 올려주기도 했다. 김준봉이 탄 헌혈차는 주먹밥을 받지 않았다. 병원남직원이 말했다.
“김밥이나 도시락을 얻어묵기는 했지만 주먹밥은 첨 봅니다.”
헌혈차 요원들은 양동오거리에서 점심밥을 먹었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 반장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자식 키운 사람덜이 모른 체허믄 쓴다요? 집집마다 성의껏 쌀을 보태 주먹밥을 맹글었지라.”
“우리는 서석1동이요!”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시위차량에 올려주면서 동네 이름을 댔다. 주먹밥이 거리에 나온 것은 서석1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시장 상인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시위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나눠주곤 했던 것이다.
여고생 박금희는 대인시장 부근의 언니 집에서 하룻밤 자고 농성동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가 호미를 놓고는 박금희에게 말했다.
“집에 안 들어와서 걱정했다, 가시내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께 언니 집에서 잤지라.”
“점심 채려주께 묵어라.”
“최루깨스를 마셨드니 속이 미싱미싱허그만요. 긍께 안 묵을라요.”
시위대가 농성동 거리를 지나가는지 구호소리가 들려왔다. 박금희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말렸다.
“엄마, 우리 대학생들이 다 죽을지 몰라라우. 공수들이 총을 쏘아불고 있어요. 전두환이 대통령 될라고 저런다요.”
“뭣이? 전두환은 뻔데기사장인디 또 뭣이 될라고 그란다고?”
‘번데기사장’이란 목에 힘을 주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우두머리라는 뜻이었다. 이미 힘이 있는 실세인데 또 대통령까지 가로채려고 하느냐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박금희는 ‘번데기사장’이란 뜻을 모르고 말했다.
“대통령이 될라고 공수부대를 내려 보내 광주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그만요. 긍께 가만히 당해서는 안 되지라우.”
딸의 마음이 시위대에 있는 줄을 눈치 챈 어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
“이년아, 니 하나 죽는다고 일이 해결된다냐?”
어머니는 막내딸 박금희가 머슴애 같이 털털하고 인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도시락을 서너 개 싸가는 등 가난한 급우의 점심까지 챙겼다. 헌혈은 몇 년 전부터 카드를 만들어 정규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헌혈하고 난 뒤에 바르는 알코올 냄새가 역했지만 그래도 막내딸은 적십자병원을 찾아가곤 했다. 따뜻한 마음에 끌려서인지 문순애나 오현희 등 서너 명의 친구들이 박금희 집으로 자주 놀러왔다. 친구들이 오면 밤에 기타를 들고 농촌진흥청 뒷산으로 올라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윤시내의 <열애>를 곧잘 불렀다. 학교에서는 선도부장이었지만 집에서는 아마추어 가수였다. 주말이면 어머니 장사를 돕기도 했다. 양동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어머니에게 상추나 고추, 깻잎 등을 남자처럼 짐발이자전거를 타고 실어 날랐다. 공휴일에는 어머니 옆에 붙어서 하루 종일 채소를 팔았다.
“안 나가고 방에서 책이나 볼게라우.”
“그래, 밭에 가서 상추나 뜯어올랑께 잠이나 자고 있그라.”
그러나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왔을 때 막내딸 박금희는 방에 없었다. 집안을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겁이 덜컥 나 이웃집으로 갔다가 농촌진흥청 옆 친구 집으로 달려가 막내딸을 찾았다.
“일심아, 금희 못 봤냐?”
“금희가 우리 집에 왔다가 헌혈차를 타고 갔어라.”
“오메 오메, 이것이 으디 병원으로 갔다냐!”
박금희는 기독병원 헌혈차를 타고 가서 또 피를 뽑았다. 이틀 만이었다. 사실은 어제도 적십자병원에서 헌혈한 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까봐 언니 집에서 잤던 것이다. 알코올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금희는 헌혈차를 보자마자 또 다시 타버렸다. 시위대를 돕는 일은 헌혈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에 가담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피라도 뽑아서 공수부대와 싸우는 시민들을 돕고 싶었다.
기독병원에서 헌혈한 박금희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방림동에 사는 급우 문순애 자취방으로 걸어서 갔다. 문순애는 성격이 과묵하고 차분한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였다.
“순애야, 방금 헌혈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밥 좀 해줄래?”
“또 헌혈했구나.”
“응, 피를 뽑고 나믄 꼭 허기가 지드라.”
문순애는 서둘러 냄비에 쌀을 안치면서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시위하다가 부상당한 청년, 대학생들을 위해 헌혈하는데 자신은 자취방에서 입시공부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배 대학생들이 시위를 권유했지만 자신은 미진한 과목을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헌혈을 했다며 누워 있는 박금희를 보니 불현듯 자신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게 여겨졌다. 오늘은 자신도 헌혈을 해야 박금희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문순애는 박금희가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자 한 마디 했다.
“나도 헌혈할래.”
“그래? 지금 나가자.”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때마침 기독병원 헌혈차가 다가오자 함께 탔다. 그러나 기독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너무 많은 시민들이 협조해서 헌혈 받는 병이 부족하므로 돌아가라고 했다.
“금희야, 헌혈도 맘대로 안 된다야. 집에 갈란다.”
“나 때문에 왔응께 니 집에 바래다 줄게.”
두 사람은 타고 왔던 헌혈차를 다시 탔다. 운전기사가 출발하기 전에 타고 왔던 사람들을 확인하더니 지원동으로 먼저 갔다가 두 사람을 돌아오는 길에 방림동에서 내려주겠다고 말했다. 헌혈차는 학동 석천다리를 지나 지원동 1번 버스종점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그때 군용트럭 예닐곱 대가 헌혈차를 추월하면서 갑자기 사격을 했다. 운전수가 소리쳤다.
“엎드려, 엎드렷!”
문순애는 의자 밑으로 엎드렸다. 그러나 박금희는 미처 의자 밑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5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총소리가 그치자 운전기사가 다시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사격은 짧았지만 헌혈차는 유리창이 모두 깨졌고 의자는 뜯겨져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성한 사람들이 부상자를 부축해서 헌혈차에서 내렸다. 다른 시위차량으로 옮겨 태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금희는 의자에 엎드린 채 “엄마, 엄마.” 하고 가느다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문순애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박금희의 옆구리 밑에서 피가 번지고 있었다. 박금희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는 피가 나지 않고 대신 하얀 무엇이 꽃처럼 피어났다. 문순애는 흐느끼면서 함박꽃 같은 그것이 삐져나온 내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금희야, 금희야!”
헌혈차 밖으로 나온 박금희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문순애가 얼굴을 흔들었지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손과 다리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총알이 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뚫고나간 피 묻은 구멍이 또렷했다. 문순애는 박금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리 내어 울었다.
“하느님, 금희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헌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박금희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운전기사가 헌혈차 타이어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바꾸가 모두 멀쩡헌께 병원으로 갈 수 있겄소.”
문순애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박금희를 헌혈차에 태웠다. 그제야 부상당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기독병원에 도착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와 박금희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뒤 박금희를 천천히 응급실로 옮겼다. 이미 늦었다는 표정들이었다. 문순애는 간호사에게 박금희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고는 복도에서 대기했다. 간호사들이 응급실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조금 지난 뒤에는 병원 자원봉사자가 와서 복도에도 있지 못하게 했다. 자원봉사자는 남광교회 이석수 장로였다. 이석수 장로가 부상당한 시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산부인과 병동에 가서 기다리라고 안내해주었다. 산부인과에는 출산한 산모들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산모들이 문순애의 흰 블라우스 옷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학생 옷에 피가 묻었어.”
“네?”
“화장실에 가서 비누로 빨아야겄그만.”
“고맙습니다.”
블라우스에 묻은 피를 보지 못했던 문순애는 그제야 깜짝 놀랐다. 박금희를 붙들었을 때 묻은 친구의 붉은 피였다. 문순애는 여자화장실로 가서 블라우스를 벗어 빨았다. 그런 뒤 다시 산부인과 병동으로 돌아왔다.
“학생, 누가 다쳤어?”
“네, 친구가요. 헌혈차를 타고 가다가.”
“긍께 돌아댕기지 말아요.”
문순애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응급실로 갔다. 간호사에게 박금희의 인적사항을 말하니 방금 영안실로 옮겼다고 말했다. 문순애는 영안실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계속>
한 청년이 피범벅이 된 국민학생을 붙들고 있었다. 김준봉은 옥상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느 새 도로에는 하얀 최루탄 분말이 허옇게 덮였고 시위대의 신발짝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 청년이 붙들고 있는 국민학생은 3,4학년쯤 돼 보였다. 김준봉은 어린 아이의 어깨를 들고 청년은 아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광주천변에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갔다. 적십자병원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부상자들을 싣고 오는 시위차량으로 병원 앞 도로는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젊은 의사가 나와 소리치며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준봉은 흥분한 젊은 의사에게 멱살을 잡혔다.
“부탁드립니다. 헌혈차를 좀 도와주세요.”
“지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는디라.”
“우리 병원 직원들과 함께 허면 됩니다.”
젊은 의사가 김준봉의 멱살을 슬그머니 놓았다. 부상당한 시민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면서 사과를 했다. 김준봉은 적십자병원 헌혈승합차를 탔다. 헌혈차에는 병원남직원 1명, 간호사 2명, 운전기사 1명이 타고 있었다. 김준봉은 메가폰을 들고 헌혈을 독려하는 일을 했다.
<여러분, 피가 부족합니다. 광주시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헌혈을 해주십시오. 광주시민을 살립시다. 공수부대 총탄에 여러분의 아들딸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헌혈을 해주십시오.>
헌혈차는 적십자병원에서 가까운 곳부터 돌았다. 광주천이 흐르는 서석교를 지나 월산동을 한 바퀴 돈 뒤 양림동오거리 은혜약국 앞에서 헌혈차를 세웠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병원남직원이 줄을 세웠지만 서로가 먼저 헌혈을 하겠다고 팔뚝을 걷었다.
“술 마신 분들은 빠지시지라.”
김준봉은 낮술을 든 사내들을 돌려보냈다. 병원남직원이 김준봉에게 또 다른 일을 부탁했다.
“급히 나오느라 얼음을 준비허지 못해부렀소. 얼음 좀 구해올 수 있겄소?”
김준봉이 메가폰을 들고서 “얼음이 필요합니다!” 하고 소리치자, 주민들이 집으로 달려가 냉장고의 얼음을 가져왔다. 헌혈한 주민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다가 떨어지자, 김준봉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슈퍼마켓 주인이 고맙게도 제과회사 빵과 우유를 박스째 건넸다. 그리고 은혜약국 약사는 1회용 반창고와 헌혈차 요원들에게 식사를 배달시켜 주었다. 그때였다. 군용헬기가 나타나 사격지점을 찾는 듯 저공비행을 했다.
“헬기다!”
헌혈하기 위해 줄선 주민들을 시위대로 착각하는 것 같아서 병원남직원과 김준봉은 재빨리 헌혈차 지붕에 적십자 마크가 찍힌 흰 천을 씌웠다. 이윽고 헌혈차는 양림다리를 건넌 뒤 전대병원을 거쳐 지산동 법원 앞으로 갈 계획을 짰다. 전대치과대학 왼쪽 담 골목 어귀에서는 서석1동 반장과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큰 함지와 라면박스, 비닐 위에 가득 쌓아놓고 있었다. 시위대들이 지나가다가 마음대로 먹었다. 시위차량이 지나가면 주먹밥을 듬뿍 올려주기도 했다. 김준봉이 탄 헌혈차는 주먹밥을 받지 않았다. 병원남직원이 말했다.
“김밥이나 도시락을 얻어묵기는 했지만 주먹밥은 첨 봅니다.”
헌혈차 요원들은 양동오거리에서 점심밥을 먹었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 반장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자식 키운 사람덜이 모른 체허믄 쓴다요? 집집마다 성의껏 쌀을 보태 주먹밥을 맹글었지라.”
“우리는 서석1동이요!”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시위차량에 올려주면서 동네 이름을 댔다. 주먹밥이 거리에 나온 것은 서석1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시장 상인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시위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나눠주곤 했던 것이다.
여고생 박금희는 대인시장 부근의 언니 집에서 하룻밤 자고 농성동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가 호미를 놓고는 박금희에게 말했다.
“집에 안 들어와서 걱정했다, 가시내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께 언니 집에서 잤지라.”
“점심 채려주께 묵어라.”
“최루깨스를 마셨드니 속이 미싱미싱허그만요. 긍께 안 묵을라요.”
시위대가 농성동 거리를 지나가는지 구호소리가 들려왔다. 박금희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말렸다.
“엄마, 우리 대학생들이 다 죽을지 몰라라우. 공수들이 총을 쏘아불고 있어요. 전두환이 대통령 될라고 저런다요.”
“뭣이? 전두환은 뻔데기사장인디 또 뭣이 될라고 그란다고?”
‘번데기사장’이란 목에 힘을 주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우두머리라는 뜻이었다. 이미 힘이 있는 실세인데 또 대통령까지 가로채려고 하느냐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박금희는 ‘번데기사장’이란 뜻을 모르고 말했다.
“대통령이 될라고 공수부대를 내려 보내 광주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그만요. 긍께 가만히 당해서는 안 되지라우.”
딸의 마음이 시위대에 있는 줄을 눈치 챈 어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
“이년아, 니 하나 죽는다고 일이 해결된다냐?”
어머니는 막내딸 박금희가 머슴애 같이 털털하고 인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도시락을 서너 개 싸가는 등 가난한 급우의 점심까지 챙겼다. 헌혈은 몇 년 전부터 카드를 만들어 정규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헌혈하고 난 뒤에 바르는 알코올 냄새가 역했지만 그래도 막내딸은 적십자병원을 찾아가곤 했다. 따뜻한 마음에 끌려서인지 문순애나 오현희 등 서너 명의 친구들이 박금희 집으로 자주 놀러왔다. 친구들이 오면 밤에 기타를 들고 농촌진흥청 뒷산으로 올라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윤시내의 <열애>를 곧잘 불렀다. 학교에서는 선도부장이었지만 집에서는 아마추어 가수였다. 주말이면 어머니 장사를 돕기도 했다. 양동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어머니에게 상추나 고추, 깻잎 등을 남자처럼 짐발이자전거를 타고 실어 날랐다. 공휴일에는 어머니 옆에 붙어서 하루 종일 채소를 팔았다.
“안 나가고 방에서 책이나 볼게라우.”
“그래, 밭에 가서 상추나 뜯어올랑께 잠이나 자고 있그라.”
그러나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왔을 때 막내딸 박금희는 방에 없었다. 집안을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겁이 덜컥 나 이웃집으로 갔다가 농촌진흥청 옆 친구 집으로 달려가 막내딸을 찾았다.
“일심아, 금희 못 봤냐?”
“금희가 우리 집에 왔다가 헌혈차를 타고 갔어라.”
“오메 오메, 이것이 으디 병원으로 갔다냐!”
박금희는 기독병원 헌혈차를 타고 가서 또 피를 뽑았다. 이틀 만이었다. 사실은 어제도 적십자병원에서 헌혈한 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을까봐 언니 집에서 잤던 것이다. 알코올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금희는 헌혈차를 보자마자 또 다시 타버렸다. 시위대를 돕는 일은 헌혈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에 가담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피라도 뽑아서 공수부대와 싸우는 시민들을 돕고 싶었다.
기독병원에서 헌혈한 박금희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방림동에 사는 급우 문순애 자취방으로 걸어서 갔다. 문순애는 성격이 과묵하고 차분한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였다.
“순애야, 방금 헌혈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밥 좀 해줄래?”
“또 헌혈했구나.”
“응, 피를 뽑고 나믄 꼭 허기가 지드라.”
문순애는 서둘러 냄비에 쌀을 안치면서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시위하다가 부상당한 청년, 대학생들을 위해 헌혈하는데 자신은 자취방에서 입시공부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배 대학생들이 시위를 권유했지만 자신은 미진한 과목을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헌혈을 했다며 누워 있는 박금희를 보니 불현듯 자신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게 여겨졌다. 오늘은 자신도 헌혈을 해야 박금희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문순애는 박금희가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자 한 마디 했다.
“나도 헌혈할래.”
“그래? 지금 나가자.”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때마침 기독병원 헌혈차가 다가오자 함께 탔다. 그러나 기독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너무 많은 시민들이 협조해서 헌혈 받는 병이 부족하므로 돌아가라고 했다.
“금희야, 헌혈도 맘대로 안 된다야. 집에 갈란다.”
“나 때문에 왔응께 니 집에 바래다 줄게.”
두 사람은 타고 왔던 헌혈차를 다시 탔다. 운전기사가 출발하기 전에 타고 왔던 사람들을 확인하더니 지원동으로 먼저 갔다가 두 사람을 돌아오는 길에 방림동에서 내려주겠다고 말했다. 헌혈차는 학동 석천다리를 지나 지원동 1번 버스종점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그때 군용트럭 예닐곱 대가 헌혈차를 추월하면서 갑자기 사격을 했다. 운전수가 소리쳤다.
“엎드려, 엎드렷!”
문순애는 의자 밑으로 엎드렸다. 그러나 박금희는 미처 의자 밑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5분도 안 된 시간이었다. 총소리가 그치자 운전기사가 다시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사격은 짧았지만 헌혈차는 유리창이 모두 깨졌고 의자는 뜯겨져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성한 사람들이 부상자를 부축해서 헌혈차에서 내렸다. 다른 시위차량으로 옮겨 태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금희는 의자에 엎드린 채 “엄마, 엄마.” 하고 가느다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문순애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박금희의 옆구리 밑에서 피가 번지고 있었다. 박금희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는 피가 나지 않고 대신 하얀 무엇이 꽃처럼 피어났다. 문순애는 흐느끼면서 함박꽃 같은 그것이 삐져나온 내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금희야, 금희야!”
헌혈차 밖으로 나온 박금희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문순애가 얼굴을 흔들었지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손과 다리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총알이 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뚫고나간 피 묻은 구멍이 또렷했다. 문순애는 박금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리 내어 울었다.
“하느님, 금희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헌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박금희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운전기사가 헌혈차 타이어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바꾸가 모두 멀쩡헌께 병원으로 갈 수 있겄소.”
문순애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박금희를 헌혈차에 태웠다. 그제야 부상당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기독병원에 도착하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와 박금희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뒤 박금희를 천천히 응급실로 옮겼다. 이미 늦었다는 표정들이었다. 문순애는 간호사에게 박금희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고는 복도에서 대기했다. 간호사들이 응급실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조금 지난 뒤에는 병원 자원봉사자가 와서 복도에도 있지 못하게 했다. 자원봉사자는 남광교회 이석수 장로였다. 이석수 장로가 부상당한 시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산부인과 병동에 가서 기다리라고 안내해주었다. 산부인과에는 출산한 산모들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산모들이 문순애의 흰 블라우스 옷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학생 옷에 피가 묻었어.”
“네?”
“화장실에 가서 비누로 빨아야겄그만.”
“고맙습니다.”
블라우스에 묻은 피를 보지 못했던 문순애는 그제야 깜짝 놀랐다. 박금희를 붙들었을 때 묻은 친구의 붉은 피였다. 문순애는 여자화장실로 가서 블라우스를 벗어 빨았다. 그런 뒤 다시 산부인과 병동으로 돌아왔다.
“학생, 누가 다쳤어?”
“네, 친구가요. 헌혈차를 타고 가다가.”
“긍께 돌아댕기지 말아요.”
문순애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응급실로 갔다. 간호사에게 박금희의 인적사항을 말하니 방금 영안실로 옮겼다고 말했다. 문순애는 영안실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