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없이 제보만 무성 … 가묘 안고 40년 ‘눈물의 세월’
(6) 행불자 어디에 묻혀있나
5·18 후 넝마주이 대부분 사라져 가족·친지 없어 인원 파악 불가
광주시 행불자 접수 242건...오월 연구자 “최대 900명 넘을 것”
소촌동 공동묘지·삼도동 야산 등 12년간 3차례 발굴 성과 없어
지난해 옛 광주교도소서 유골 발견...국립과학원 정밀조사에 실낱 희망
5·18 현존자료 부족하고 왜곡 심해 암매장 경위 규명 난항...올 조사위 활동에 기대
2020년 02월 04일(화) 00:00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의 행불자 묘역 너머로 따스한 기운을 담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올해 5·18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가 새롭게 꾸려지는 등 당시의 참상을 밝히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사람을 죽이고 싣고 갔으면 이제 유골이라도 돌려줘야 할 것 아니냐”

5·18이 40주년을 맞았다. 이말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40년 동안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다른 말이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살았던 그들이 계엄군이 휩쓸고 지난간 뒤, 감쪽같이 우리의 곁에서 사라졌다. 그들을 잊지 못하는 우리는 그들을 찾지 못했다는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끊임없이 당시의 행방불명자 또는 암매장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행불자 가족들은 삶은 어떠했을까? 40년의 긴 세월 속에 1980년 5월 사라진 부모·형제·친지의 뼛조각이라도 찾고자 이리저리 뛰어 다니기 바빴고, 매년 5월만 되면 이름뿐인 가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곧 돌아올 것이라는 또는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는 한가닥 희망에 아직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고 버텨온 세월이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어느 누가 내 가족이 죽었다고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암매장 장소를 찾아 유해 봉안과 동시에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위로하고, 국립5·18묘지에 안장하는 것으로라도 도리를 다하고 싶어한다.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명령자와 함께 40년간 풀리지 않은 5·18 핵심 의혹이 바로 ‘행불자와 암매장지’ 문제다.

3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 당시 실종된 것으로 인정돼 가족들이 피해보상을 받은 경우는 현재까지 84명에 그친다.

행불자 관련 증거가 뚜렷해야만 행불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6명은 2001년 광주시 ‘5·18행방불명자 사실조사위원회’가 무명 열사의 유골을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면서 실종자 가족 유전자의 DNA와 비교해 신원을 확인했을 뿐 나머지 78명의 소재는 현재까지 불분명하다.

광주시에 5·18 행방불명자로 접수된 건수는 모두 448건으로 중복 건수를 제외하면 모두 242명이다.

하지만 오월 연구자에 따라 400명에서 최대 900명까지 사라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고, 행방불명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1980년 오월이 끝나자 무등갱생원이 문을 닫아버렸고, 광주에 넝마주이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이들은 친지 가족도 없기 때문에 누가 신고조차하지 않아 5·18당시 사라진 이들에 조차 들어가지 못해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행불자의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행방불명자를 찾기 위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성과가 없이 행불자 가족들의 가슴에 또 다른 상처만을 남겼다.

1997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복권되면서 광주시가 시민 제보를 바탕으로 암매장 추정지 발굴에 나섰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암매장 추정지 9곳을 발굴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소촌동 공동묘지, 삼도동 야산, 주월동 아파트 건설 현장 등지에서 유골이 나왔지만, 모두 5·18 유가족과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지 않았다. 황룡강 제방과 상록회관 주변에서 나온 것은 동물 뼈로 밝혀졌다.

5·18기념재단도 5·18 당시 제3공수여단 본부대장의 증언에 따라 2017년 11~2018년 1월 옛 광주교도소, 광주∼화순 간 너릿재터널 인근 도로, 옛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주둔부지 인근 광주천변 등을 암매장 추정지로 판단해 발굴 작업을 했지만 유해는 발굴되지 않았다.

이후 지난해 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 부지의 개발을 위해 공동묘지의 이장작업을 진행하던 중 법무부 기록보다 많은 유골이 발견되면서 다시금 행불자 가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현재까지 상황은 5·18관련 행불자 유골이 아니라는 주장쪽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지만, 행불자 가족들은 아직 국립과학원의 정밀조사 결과 발표가 나오지 않아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또 지난달 28일부터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 추가유해 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암매장의 흔적은 찾지 못한 채 종료됐다.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 행불자와 암매장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게 오월 연구자들의 말이다.

행불자와 암매장 진상규명에 필요한 5·18관련 현존 사료는 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하고 질적으로도 사료의 왜곡, 날조가 심해 행불자와 암매장의 경위를 완전하게 밝혀내기가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다.

옛 광주교도소 일대, 광주 외곽지역, 도청 재진입 이동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은 도로나 주변 논밭 또는 야산에 방치 또는 가매장 혹은 암매장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각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암매장 관련제보는 2017년 이전에는 총 59건이었는데, 2017년 8월 전두환 회고록의 역사왜곡과 헬기사격 탄흔발견이 화제가 되자 암매장 관련 추가 제보가 13건이나 이어졌다.

이후 추가로 제보가 계속돼 지금까지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에 접수된 것은 모두 72건이다.

암매장은 5·18 당시에 계엄군이 총격이나 기타 원인 등으로 민간인을 사망케 해, 이를 민간병원이나 국군병원 등의 영안실에 안치하지 않고 야산 등에 묻은 행위로 은폐 의도가 없는 가매장과 구별된다.

하지만 당시 은폐의도 없이 가매장 했더라도 가매장 여부를 말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발굴이나 발견되지 않았다면 암매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오월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암매장에 대한 제보를 추가로 접수하고 제보지에 대해 면밀한 재조사와 더불어 암매장에 대해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측의 증언과 이와 관련된 자료 조사가 시급하다는 게 오월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행불자 가족들은 40주년을 맞는 올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의 활동이 시작됨에 따라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에 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도 “40년이나 지난 이제는 5월 당시 가해자 측에 있던 이들이 진실의 입을 열어야 할 때”라면서 “사회적 분위기와 사회적 동의를 통해 그들이 진실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종 관련자료를 조사·분석한 뒤, 실제 계엄군이 시민을 살상한 장소와 관련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암매장지 발굴작업 등에 다시 나서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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